우리 삼촌은 어디에 있나요?
우리 삼촌은 어디에 있나요?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5.1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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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논설위원

[제주일보] 어릴 때였다. 책 보따리를 허리춤에 둘러메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마주치는 아저씨가 늘 있었다. 만나면 꾸벅 절을 하면서 “삼춘(그때는 발음이 잘 안돼 삼촌을 삼춘이라고 했다) 어디 감수꽈?”라고 인사했다. 삼촌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응, 학교 갔다 왐사. 바당에 감쪄.”라고 대답했다. 삼촌의 얼굴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어디 아픈가’라는 생각과 함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기도 했다.

설 명절이 됐다. 다들 즐거워하는 날이다. 먹을 것, 입을 것, 신을 것이 전부 달라지기 때문이다. 새 옷을 입고 친구들과 만나 서로 뽐내며 뛰어놀기도 했다. 날씨는 조금 추웠지만 기분만큼은 따뜻했다. 이 날이 되면 가장 먼저 부모님께 세배를 했다. 아버지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 너도 한 살 더 먹었구나. 공부 잘하고 건강해라 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뱃돈을 준다.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받는 순간 그저 즐겁기만 했다. 올레길 따라 집 밖으로 나와 룰룰랄랄 뛰어다닌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면 이웃집 삼촌이 걸어온다. 내심 기다렸던 순간이다. 망설일 것도 없이 “삼춘! 복많이 받음써”라고 인사를 했다. 삼촌은 “오늘 예쁜 옷 입었구나”라고 하시면서 주머니에서 세뱃돈을 꺼내준다. “그래, 공부 잘하고 건강해라”라는 말과 함께. 그러면 평소보다 각도를 더 숙이고 넙죽 절하면서 “네, 삼촌”하고 즐거워 했다.

정다운 그 이름 삼촌! 언제부터인가 삼촌이라는 말이 사라져버렸다. 동네 삼촌은 아버지나 마찬가지로 자상하고 고마운 분이었다. 지금 기억해도 어릴 적 살았던 마을에는 삼촌이 많았다. 이웃집은 물론 건너 건너의 집에도 삼촌은 있었다. 하여, 어디 가거나 올 때 삼촌과 마주치는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삼촌은 살짝 미소띤 얼굴로 늘 반가워하는 모습으로 대해줬다. 우울했던 마음이 삼촌의 미소 덕분에 금새 밝아지고 무거웠던 발걸음이 가벼워지곤 했다. 명절 때 세뱃돈이라도 받는 날이면 새 신발도 사고 친구들에게 “우리 삼촌이 준 세뱃돈으로 샀지롱”하면서 자랑도 많이 했다. 그렇게 삼촌은 자랄 때 온정이 넉넉한 분이었다. 동네 경조사가 있을 때면 삼촌들이 찾아와 일을 도와주고 격려와 위로를 해주는 분이었다.

그렇다면 삼촌이라는 말, 우리의 ‘삼촌문화’가 왜 멀어지는 것일까. 제주도의 ‘삼촌문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볼 때에도 보기 드믈게 아름다운 전통이자 관습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삼촌, 어디 갔다 왐수꽈?” “응 기여. 착허다”라는 말이 요새 잘 들리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른들에게 있다. 제주도가 제2공항. 해군기지, 세계7대자연경관 등 뭐니뭐니 하면서 보이는 것에 많이 집착하다보니 아름다운 전통문화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쇠퇴해지고 말았다. 눈 앞에 보이는 이기심만 쫓다보니 ‘삼촌문화’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다른 지역에 온 이주민이 많아지고 계속되는 난개발과 환경 오염 등 짜증나는 일들이 자꾸 생겨나면서 정겨웠던 삼촌이 어디로 가버렸던 것이다.

요즘 선거철이다. 다음 도지사를 뽑아야 할 중요한 시기다. 어떤 선거든 이기는 것이 목적이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모 후보는 부동산 투기, 부동산 개발회사 임원 근무, 토건 세력과의 결탁, 논문 표절 등 각종 의혹으로 도지사 후보 자격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간은 약간씩 비겁하고 약간씩 계산이 빠르며 이기적이기 때문에 위대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루이제 린저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 다음 달 도지사 선거에서는 위대하지는 않더라도 도민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제주를 위해 진정으로 일을 할 사람, 정체성이나 도덕적으로 좀 더 깨끗한 그런 사람을 뽑아야 한다. 도지사를 한자로 도백(道伯)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백(伯)은 큰 아버지를 말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삼촌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삼촌을 뽑고 ‘삼촌문화’를 되찾을 때라고 생각해본다.

이참에 한번 불러보자. “삼촌! 어디 가부러수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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