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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기에…‘가족’이니깐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8.05.13

[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화가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은 황소가 끄는 달구지에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길을 가는 농부를 그리고 있다.

또 그의 작품 ‘서귀포의 환상’은 섭섬과 문섬이 있는 서귀포 바다를 배경으로 과일을 따는 아이들, 백조를 타고 하늘을 날으는 아이를 그렸다.

이중섭이 서귀포 시절 남긴 작품 속에는 그가 사랑했던 ‘가족’이 있다.

고(故) 김의경의 희곡 ‘길 떠나는 가족’은 황소가 끄는 달구지를 이렇게 말한다.

“나와 그림이 하나가 되었을 때, 너와 그림이 하나가 되었을 때, 그때 우리는 만나게 될 거라고 약속했었지?

그게 오늘일 줄 너도 미처 몰랐지? 마사코 너의 새 이름 이남덕. 따뜻한 사람. 이제부터 조선의 소(牛)와 함께, 우리는 하나 되어 살게 될 거야.”

▲대향(大鄕) 이중섭(1916~1956)은 일본 유학시절에 만난 일본 여성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하고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사람”이라며 그녀의 이름을 이남덕으로 바꿔 불렀다.

6·25 전쟁이 나자 서귀포로 피난 온 이중섭은 일본으로 돌아간 아내 이남덕과 아이들을 그리며 늘 바닷가에 있었다.

시인 김춘수(1922~2004)는 이중섭이 즐겨찾았던 ‘소낭머리’ 바닷가에서 8편의 연작시 ‘이중섭’을 남겼다.

‘바람아 불어라/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남쪽으로 쓸리는/끝없는 갈대밭과 강아지풀과/바람아 네가 있을 뿐/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아내가 두고 간/부러진 두 팔과 멍든 발톱과/바람아 네가 있을 뿐/가도 가도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바람아 불어라.’

가족과 떨어져 혼자 서귀포에 남은 이중섭의 처지를 ‘바다가 없다’고 썼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미국 인류학자 조지 P. 머독(1897~1985)은 ‘가족은 주거를 같이 하고 경제적으로 협동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사회집단’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오늘의 가족들에게 이 고전적 정의를 들이대 보면 그래도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어떤 부부의 예를 들어 보자.

첫째, 남편과 아내가 떨어져 산다. 기러기 아빠인지 기러기 할빠인지 어쨌든 부부가 같이 안 산다. 둘째, 부부가 경제적으로 너 벌어 살고 나 벌어 산다. 물론 기본적 생계비는 공통으로 쓰지만 문화 오락비, 저축 통장은 따로 따로다. 셋째, 자녀가 있든 없든 현재 자녀와도 함께 살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가족의 3가지 조건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는다.

물론 머독이 이런 정의를 내린 1949년에도 이미 가족(family)의 형태는 복잡했었다. 그래서 그는 따로 사는 가족을 가구(家口-household)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런 가족을 가구라고 부르면 말이 좀 이상해진다. ‘우리 가족은 행복해’ 하는 말을 ‘우리 가구는 행복해’ 할 것이니까.

▲요즘 들어 ‘가족’이 다시 화두다. 삶이 팍팍해진 여파라고들 한다.

따로 살던 부부가 합치고, 멀리 떨어져 독립했던 자녀들도 부모와 합친다.

일종의 역(逆)분가 트렌드다.

삶의 위기가 가족의 내면을 깨우고 있다고 한다. 문득 의지할 곳이 사라졌을 때 가족이 소리없이 다가와 그 빈자리를 채운다. 가족을 소재로 한 소설·공연·광고들도 다시 부쩍 늘었다.

본지 문화면(5월 11일자)에는 가족 사랑이 담긴 책들이 많이 소개됐다.

고난과 역경을 사랑과 웃음으로 이겨내는 ‘세상에 이런 가족’(저자 김별), 우리의 아버지들이 전하고 싶은 말 ‘아버지는 말하셨지’(저자 송정연), 더 할 나위없는 사랑, 그 이름 ‘어머니와 나’에서부터 세대를 뛰어넘은 가족 사랑 ‘할아버지와 나의 정원’(저자 비르기트 운터홀츠너)도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트렌드를 ‘신(新)가족주의 문화의 대두’라고 진단한다.

사실 그렇다.

우리는 아버지라는 말에는 가슴이, 어머니를 부르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람들이다.

조건 없는 베풂과 자기희생은 가족의 원천이자 힘이 된다.

‘가족’이기에...‘가족’이니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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