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가린 제주
평양에 가린 제주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8.05.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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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지방선거판에 평양만 보이고 제주가 안 보인다. 다음 달 실시되는 제7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의 역설적 상황이다. 본격적인 선거 국면으로 나아가지만 제주의 현안이 묻힌다. 그나마 각 후보들이 내놓은 제주 핵심현안에 대한 답은 입을 맞춘 듯 ‘유보’일색이다.

앞으로 4년간 지방정부를 이끌어 가겠다는 제주도지사 후보들의 모습이다. 이들을 믿고 제주의 미래를 맡겨야 할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지난 몇 년간 제주전역을 할퀸 난개발과 그로인한 부동산 투기, 한계상황에 이른 하수종말처리장, 교통난. 청년 취업난 등. 현안은 차고 넘치지만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북미정상회담 등 대형 이슈에 가려진 때문이다. 나아가 제1야당은 아직도 케케묵은 ‘색깔론’을 꺼내 정쟁을 이어간다. 지역이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제주에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의 날(10일)을 하루 앞둔 그제 제주일보기자가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만난 한 공정선거지원단 단원은 “제주는 인구와 관광객 급증으로 혼란의 과도기를 맞고 있다. 발전과 퇴행의 기로에 섰다”며 “만약 일꾼들을 잘못 뽑는다면 제주사회는 혼돈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후보의 정책과 자질, 도덕성 등에 대한 검증이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서울 출신으로 3년 전 제주에 정착한 한 이주민은 “어떤 후보가 제주를 위해 제대로 일할 사람인지 가려내는 것은 유권자들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요즘 도민들은 흑색선전에 속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 온갖 의혹이 명확하게 해명되지 않는다면 그런 후보도 선택할 리 없다”고 덧붙였다

역대 선거를 보면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정책은 오간데 없고 상호 비방전이 극성을 이룬다.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자질과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없다. 획일적인 가치 기준이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속가능한 제주를 선두에서 이끌어 나가겠다면, 그에 상응하는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약속은 내놔야 한다. 자신이 정말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자격과 역량을 갖췄는지도 투명하게 검증받아야 한다.

지방선거인 만큼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과는 다른 판단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올해 지방선거는 우려되는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이른바 지방선거임에도 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의 이슈가 국가적 관심사에 가려진 탓이다. 중앙 정치권의 정쟁 이슈가 지방선거판을 뒤덮고 있는 게 올 지방선거의 특징이다.

올 지방선거는 유독 지방자치와 동떨어져 가는 분위기다. 지역 주민의 삶과 밀착된 정책이나 공약, 지방분권이 실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강화하는 ‘지방분권’은 개헌이 무산되면서 힘을 잃었고, 지방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결정권을 강화하는 ‘주민자치’도 나아질 조짐이 없다. 지역이슈가 뜨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방선거 또한 정부·여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띨 수밖에 없지만, 지역자치 이슈를 다 덮어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정상회담이 중요한 의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지방선거의 취지 차체가 매몰돼선 안 된다.

제주는 지금 중대한 변혁기를 맞고 있다. 지난 잘못을 바로잡아 고쳐나가고, 또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 훼손된 제주가치를 복원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역민이 주체적으로 풀뿌리민주주의의 내실을 다지고, 나아가 지속가능한 제주의 미래기반을 다지는 기회의 장이다. 제주문제에 대한 경쟁과 관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후보자와 정당들은 제주의 이슈를 정책과 공약으로 내놔 심판 받아야 한다.

제주가 직접 나서 ‘제주의 문제’를 풀고 그 문제를 풀 대표를 뽑는 것이 지방선거다. 지방선거에 제주가 빠지면, 제주는 앞으로 4년간 제주를 외면한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의 주(主)인 유권자가 평양에 앞서 제주를 똑바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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