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함성과 민족 정기가 녹아있는 역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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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일보
  • 승인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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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제18코스(조천-김녕올레)/조천만세동산~관곶 2.3㎞

[제주일보]  #조천만세동산

‘열네 분 하나 되어/ 겨레의 혼 부를 때/ 뉘 저 바다 잠재우고/ 저 하늘 가릴 수 있었으랴/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세/ 온 누리에 차고 넘쳤나니’ 삼일독립운동 기념탑 아래 병풍처럼 두른 벽면 오른쪽에 새긴 글이다. 대하는 순간 모골이 송연해진다.

1919년 제주의 만세운동은 일제의 폭정에 항거한 3․1운동의 확산기류로, 같은 해 3월 21일 이곳 미밋동산에서 최초로 결행됐다. 김시범․김시은․고재륜․김형배․김연배․황진식․김용찬․백응선․김장환․박두규․이문천․김희수․김경희․김필원 등 조천 출신 14인인의 주도 아래, 많은 주민들이 한 마음으로 결집된 이 운동은 도민들에게 뜨거운 민족정기를 일깨운 일대 쾌거였다. 이 일로 대부분의 열사들은 일경에게 잡혀 혹독한 옥고를 치렀고, 백응선 열사는 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기도 했다.

기념탑 옆에 세운 김봉각(金奉角) 선생 공덕비는 이곳 만세동산 성역화 사업을 추진할 때 거금을 쾌척한 거룩한 뜻을 새겼다. 선생은 조천읍 신흥리 출신으로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갖은 고초를 치렀고, 약관의 나이에 계림동지회를 결성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르기도한 분이다.

 

#항일기념관

올레길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기념관 경내로 들어섰다. 양쪽엔 다정큼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워 방문객을 맞고, 눈 앞에는 애국선열추모탑이 준엄하게 섰다. 정낭의 모습으로 디자인했다는 추모탑 아래쪽 날개엔 당시 조천만세운동의 모습, 그리고 양중해 선생의 ‘애국선열을 추모하는 글’을 새겼다. 추모탑 뒤로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위패를 봉안해 제사 지내는 창렬사, 앞에는 조각가 박동수의 작품 ‘절규’와 ‘함성’이 자리 잡았다.

항일기념관으로 가는 길 왼쪽에는 독립유공자의 비를 모았고, 다음에 ‘김성칠, 김대식 선생 공덕비’, ‘신철주 전 북제주군수 공덕비’, ‘조천만세동산 성역화사업추진 기념비’를 세웠다. 이 기념관은 지역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자주독립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과 애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기념관에 들어서자 ‘5인의 군상 상징조형물’이 맞는다. 이 기념관은 제주의 3대 항일운동인 ‘법정사 항일운동․조천만세운동․해녀항일운동’을 조명하고, 학생들을 위한 교육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곳을 그냥 지나치는 올레꾼들이 많아 아쉽다는 학예사의 하소연을 뒤로 하고 뒷문 올레길로 나서는데, 어디선가 ‘대한독립만세!’의 절규가 이명처럼 아련하다.

 

#5월의 오솔길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져 가까운 절마다 매달아 놓은 연등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바람결에 익숙한 향기가 훅 풍겨 바라보았더니, 벌써 찔레꽃 무더기가 하얗다. 가만히 살피니 찔레꽃만도 아니었다. 노란 실거리나무 꽃도 많이 보인다.

마늘도 캘 때가 되었고, 보리도 누렇게 익어간다. 구불구불 해안도로까지의 오솔길에는 ‘흑룡만리’ 이어지는 밭담들이 많이 남아 옛 정취를 자아낸다. 오솔길을 나서 맞은편 바닷가로 돌출된 커다란 동산에 나무계단이 놓여 있어 올랐는데, 한라산에서 이곳까지 또 이곳에서 서우봉까지 시원스레 다 보인다. 언제부터 이런 멋진 곳이 있었던가. 그 이름이라도 써 붙였으면 좋았을 것을….

 

#관곶 그리고 엉장매코지

그 동산 끝나는 곳이 조천과 신흥리의 경계이고, 해안도로로 조금 더 가다보면 왼쪽에 조천읍에서 세운 것으로 보이는 ‘관곶’이란 간판이 서있다. 그림 속 조천읍 지도엔 북쪽으로 뻗친 부분에 표시했는데, 사진에는 바로 옆 서쪽으로 뻗은 바위 부분에 표시했다. 같은 간판 안에서도 차이가 난다. 탐라순력도(1972)의 ‘조천조점’에는 연북정에 가까운 지금의 조천연대가 ‘관곶연대’로 나와 있고, 이곳에서 직선거리 200m가 채 안 되는 곳에 자리한 연대는 ‘왜포연대’이다.

안내판에는 ‘이곳은 제주에서 해남 땅끝마을과 가장 가까운 곳(83㎞)이라고 한다. 조천관 시대에 조천포구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곶(串)이란 뜻으로 관곶이라 불린다’고 써놓았다. 그렇다면 설문대할망 설화에 나오는 ‘엉장매코지’와는 어떤 관계일지? 우리가 보통 다리를 놓을 때는 가장 짧은 구간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설문대할망이 다리를 놓으려 한 곳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돌출한 등대가 있는 지점은 아닐까?

현용준 선생이 채록해 쓴 ‘제주도 전설(서문당, 1996)’에는 ‘어렸을 때 들었다’면서 ‘그 자취가 조천리․신촌리 등 앞바다에 바다에 흘러 뻗어간 여(바위 줄기)’라고 썼다. 그 어렸을 적에 들은 게 신촌리가 아니라 신흥리가 아니었을까? 하긴 전설의 속성이 구전(口傳)이어서 그걸 따지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하지만….

 

#다시 찾은 왜포연대

지도로 보나 실제로 보나 등대가 서 있는 곳이 다리를 놓기 좋은 위치라고 생각하며 ‘엉장매’의 단서가 될 만한 곳을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차라리 좀 전에 올랐던 조천지경의 바위동산이 오히려 더 ‘엉장매’에 가깝단 생각이 든다. 오던 길을 되돌아 10여 년 전에 취재했던 왜포연대에 다시 가 본다.

왜포연대(倭浦烟臺)는 고포연대라고도 부르는 신흥리 784번지에 자리한 조천진 소속 연대로, 제주도 기념물 제23-13호이다. 동쪽으로 함덕연대, 서쪽으로 조천연대와 교신하였으며, 별장 6인, 봉군 12명이 배치됐었다. 다른 곳의 연대는 보통 방형인 데 비해 왜포연대는 타원형의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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