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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골목마다 ‘제주의 정겨움’이 살아 숨쉬는 곳66. 제18코스(제주원도심-조천올레)-닭모루~조천만세동산 5.3㎞
제주일보 | 승인 2018.04.30

[제주일보]  # 신촌포구에서 수암정까지

닭모르에서 출발, 신촌포구에 이르는 길가에는 제주의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환해장성의 자취부터 밭담에 이르기까지 시골 분위기 그대로다. 초가지붕을 덮은 멀칭으로부터 갯담과 원담, 팽나무와 슬레이트 지붕, 폐가들도 더러 보인다. 다른 곳 같으면 아담하게 고쳐 카페라도 꾸밀 법한 집들이 방치되어 있다. 고무보트와 작은 배들이 매어진 포구도 정답고 가는 곳마다 물통도 남아있다.

조천과 신촌리의 경계에 있는 대섬은 ‘점성이 낮아 넓은 지역으로 퍼지면서 흘러내린 용암류(파호이호이용암류)가 표면만 살짝 굳어져 평평하게(투뮬러스) 만들어진 지형이 특징으로 제주도 내에서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라 써놓았다. 섬 때문에 막힌 바다가 호수처럼 보이고, 그 속에 파래 같은 해초가 번성해 지저분해 보인다.

들어가 보면 ‘옛 연못 복원작업’과 ‘옛 토담집 복원작업’이라 쓴 패널이 보이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알 수 없었고, 학교법인 한양재단 소유 토지이므로 허가 없이 무단 점유 사용과 수목․자연석 채취를 금한다는 내용만 있다. 멀리 한라산이 거룩하게 보이는 곳이어서 사진을 몇 번 찍고 건넜는데, 얼마 안 가 수암정이다.

 

# 윤슬의 ‘각인 갤러리’

18코스 17.4㎞ 지점의 수암정을 지나 좀 지치다고 느껴질 무렵, 골목길에 위치한 쉼터 ‘각인 갤러리’에 들러 보았다. 조천비석거리가 얼마 안 남은 지점이다. 민가를 빌려 차렸는데,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머뭇거리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이 원하는 일을 하고/ 마음이 원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라는 이지성의 ‘인생아 고맙다’에 나오는 글귀를 옮겨 놓은 액자가 심상치 않다.

작고 아기자기하게 꾸민 것이 여성의 솜씨이지 싶은데, 명함에 ‘윤슬’이란 예쁜 이름이 올라 있다. ‘윤슬’이라면 우리말로 ‘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란 뜻이 아니던가. 커피를 끓여놓고 식히면서 앨범을 들춰본다. 섬 곳곳에 널려있는 여러 편린을 모아놓은 소품들이 구슬처럼 빛난다. 하찮다고 여겨지던 것들도 ‘주제를 살려 잘 찍어놓으면 충분히 작품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  조천비석거리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된 조천비석거리는 팽나무 뒤로 옛 7기의 비석과 오른쪽으로 근래에 세운 비석 6기가 나란히 서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 조천 역시 화북과 함께 제주의 관문 역할을 했는데, 계절풍을 기다려 출륙하는 요지여서 조천진성과 연북정, 조천관 등이 있었다. 관(舘)은 보통 조천(朝天)이란 지명에 붙여 쓰였는데, 탐라순력도(1702) ‘조천조점’에는 동네가 조천관리(朝天舘里)로 나와 있다. ‘조천조점’의 그림 중 연대 옆 민가 속 독특한 형태의 기와 한 채가 그려져 있는데, 그게 조천관이 아니었나 싶다.

비석들은 대부분 목사의 선정비로 채동건(蔡東健)․백희수(白希洙)․김수익(金壽翼)․이의식(李宜植)․이원달(李源達) 목사와 김응빈(金膺斌) 판관, 그리고 판독 불명의 비 1기다. 여기 있는 백희수 목사는 화북비석거리와 대정읍 보성초등학교 안, 제주목관아지 등에도 비를 남겼는가 하면, 탐관오리로 탄핵 받아 유배당한 김수익 목사의 비도 섞였다. 김응빈 판관은 이곳 조천 출신으로 임기 중 모친상을 당해 퇴직하고 떠났다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귀향해 도내의 시인묵객들을 모아 영주음사(瀛州吟社)를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다.

 

# 조천 연북정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연북정은 본래 객사(客舍)였다고 한다. 성 밖에 위치했었다는 기록이 있고, 1590년(선조 23)에 이옥(李沃) 절제사가 성을 북동쪽으로 물려 쌓으면서 그 자리에 이를 옮겨 세워 ‘쌍벽정(雙壁亭)’이라 이름 했다고 한다. ‘연북정(戀北亭)’이란 이름은 선조 32년(1599) 성윤문 목사가 이 건물을 보수한 뒤 붙였다고 한다.

연북정은 전패를 모신 객사(客舍)처럼 이곳에 머물던 사람들이 북쪽에 계신 임금에게 향망궐배(向望闕拜)하며 소식을 나누던 곳으로 생각된다. 건물은 높이 14척의 축대 위에 동남향으로 지어졌는데, 북쪽으로 타원형의 성을 쌓았다.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전후좌우 퇴와 기둥 배열 방식 등은 민가와 같고, 바닥은 마루를 깔았으며, 합각지붕이다. 탐라순력도 ‘조천조점’에는 지금의 자리에 ‘연북정’으로 있다. 조천진성 터는 발굴을 하는지 성을 일부 허문 채 작업 중에 있다.

 

# 조천연대

조천포구를 통해 오솔길로 다시 해안도로에 나오면, 길 건너 동산에 돌로 쌓은 조형물이 보이는데 바로 조천연대다. 탐라순력도 ‘조천조점’에는 관곶연대(館串煙臺)로 나와 있다. ‘동쪽으로 왜포연대(1.4㎞), 서쪽으로 원당봉수(3.3㎞)와 교신했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해 운영했던 조천진 소속의 연대’라 써 놓았다.

1975년에 복원된 조천연대는 상부 6.4×5.1m, 하부 7.5×6.3m, 높이 2.5m의 사다리꼴 형태이며, 연대 위 난간 벽은 폭 0.7m, 높이 0.6m이고, 입구의 폭은 1.8m로 다른 연대에 비하여 넓다. 완만한 계단과 상부까지 놓인 돌층계가 눈길을 끄는데, 거친돌 바른 층 쌓기 형태이다.

높은 동산에 위치해서 그런지 한라산과 멀리 떨어진 오름까지 잘 보이며, 동쪽으로 신흥리 해안, 서쪽으로는 원당봉 앞 해안까지 살필 수 있는 곳이다. 미끈하게 복원된 모습이 좀 아쉬웠으나 그런대로 고증은 거쳤으리라 믿고, 눈앞에 보이는 올레 18코스 종착점 조천만세동산을 바라보며 발길을 옮겼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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