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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시아 문명의 원천 신들의 나라 인도를 걷다
(38)역사적 도시 품은 서부 인도를 찾아서<11>-치토르가르③
제주일보 | 승인 2018.04.26
과거 귀족들이 거주했던 대저택인 ‘하벨리’.

[제주일보] 치토르가르 전경을 보려면 승리의 탑을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어두컴컴한 탑 안을 돌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계단이 비좁은데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서인지 바닥도 너무 미끄러워 올라가기를 포기했습니다.

여기서도 카메라 배낭이 이곳저곳에 자꾸 걸리네요. 아까 떨어졌던 일이 생각나 이번은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척 아쉽지만 중간에서 내려 왔습니다. 탑 위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비록 파괴는 됐더라도 메와르 왕조의 수도가 장관이었을 텐데 어쩔 수 없네요. 이런 걸 보고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겠죠. 오를 때는 어찌어찌 오르겠는데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 자칫 위험한 상황이 될 것 같군요.

치토르가르 성은 둘레가 무려 36㎞나 되는 인도에서 가장 큰 성이라고 합니다. 8~16세기까지 메와르 왕조 라지푸트(Raijput)가 이곳에 성을 짓고 살았답니다. 라지푸트는 ‘왕가의 자손’을 일컫는데 라자스탄의 지배계급이라고 합니다. 라자스탄이란 지명도 ‘라지푸트들이 사는 땅’이란 뜻이랍니다. 왕가의 자손들이라고는 하나 실제 이들은 평민이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었다는군요.

왕조 파드미니 왕비는 “얼굴을 보여달라”는 술탄 알라우딘의 집요한 요구에 이곳 여름궁전의 계단에 서게 된다. 술탄은 반대편 건물에서 거울 통해 호수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봤다고 한다.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동서 교역로에 위치한 라자스탄 지방은 잦은 전쟁으로 인해 무사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무술이 뛰어난 라자스탄 사람들을 뽑아 무사계급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라지푸트가 태어난 것이지요. 그들이 수많은 성채와 하벨리(귀족들 대저택)를 건축한 것이 지금의 치토르가르 성이 됐다는군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은 여기저기 모여앉아 옛 선인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을 유심히 살피고 있습니다. 노트에 기록하는 학생들이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여행지에서 문화유산은 보는 둥 마는 둥 떠들고 사진 찍기에 바쁜데…. 인도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이런 학생들이 있기에 인도 문화유산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빨리 안 돌면 시간 안에 치토르가르 성을 다 돌아볼 수 없으니 서두르라고 합니다. 조금은 절뚝거리면서 다시 치토르가르 성을 비운의 성으로 만들었던 파드미니 왕비의 궁으로 갑니다.

앞서 ‘조하르(Johar)’를 언급했었는데 그 조하르의 시작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치토르가르 성 안에 세워진 한 사원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비운의 왕비 파드미니의 이야기는 13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메와르 왕조 라탄 싱 왕에게 아름다운 왕비 파드미니가 있었는데 그 미모가 워낙 출중해 소문이 멀리 델리까지 퍼졌답니다. 이에 델리의 술탄 알라우딘 할지는 파드미니를 보기 위해 라자스탄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파드미니는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고, 술탄은 계속 파드미니를 만나야 겠다고 압박했습니다. 그러자 파드미니는 술탄에게 통보를 했답니다.

“나를 만나고 싶으면 먼저 무장을 해제하고, 연못에 비친 모습을 거울을 통해서만 봐야 할 것이다.”

술탄은 그렇게라도 파드미니를 보고 싶었습니다. 호수 가운데 있는 여름궁전 계단에 그녀가 서자 건너편 건물 벽면에는 거울이 걸렸습니다. 술탄은 거울을 통해 호수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미모에 반한 술탄은 결국 라탄 싱 왕을 붙잡아 놓고는 제안을 합니다. ‘나와 하룻밤을 함께하면 왕을 풀어주겠다고.’

파드미니는 술탄의 제안을 받아들여 꽃가마 150대를 준비하고 시녀들과 함께 술탄 진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꽃가마에는 시녀들 대신 병사들이 숨어있었고 파드미니가 온다는 소식에 술탄은 물론 병사들까지 헤이해진 틈을 타 붙잡힌 왕을 구출해 돌아왔습니다. 격분한 술탄은 치토르가르 성을 총공격했습니다.

치토르가르 성채에 조각된 무희.

성이 점령당할 무렵 파드미니와 라지푸트 부인들은 아이들을 피신시킨 후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불타오르는 장작더미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무려 1만6000여 명이나 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죽음의 의식인 조하르의 시작이랍니다.

파드미니 왕비의 여름궁전은 멀지 않은 곳 암반에 만들어진 연못 옆에 있는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옛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합니다.

술탄이 거울을 통해 파드미니를 봤다는 건물에는 오래된 거울 하나가 걸려있는데 여기를 찾는 사람들은 ‘그 당시 거울인가’하고 바라보는군요. 조하르가 행해졌다는 장소는 지하통로로 이어져 있는데 출입을 금하고 있다고 합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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