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배죽’, 왜 지금에...
‘조배죽’, 왜 지금에...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8.04.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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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가운데 ‘콩깍지’라는 단어가 있다. 콩을 털어내고 남은 껍질이다. 이 말의 유래를 들춰보면 과거 농경사회 사람들은 눈의 크기와 콩깍지의 크기가 거의 같고 모양이 비슷한 때문에 눈을 가릴 대상을 콩깍지를 사용했다고 하는데서 나온다.

그런데 콩깍지는 고유의 의미보다 지금에 이르러선 ‘콩깍지가 씌이다’라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된다. ‘앞이 가리어 사물을 정확하게 보지 못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겉에 드러난 화려한 모습만 본 채 내면에 존재하는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흔히 연인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사랑의 콩깍지가 씌였다’고 흔히 쓴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한 달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제주도지사를 비롯해 제주도교육감, 제주도의회의원 선거전 대진표가 굳어지는 모습이다. 후보들의 종종걸음이 이어진다.

벌써부터 경쟁 후보들 간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면서 싫든 좋든 제주는 선거 국면으로 급속하게 빠져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돌연 ‘조배죽’이라는 단어가 제주도지사 선거전 한복판에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배죽’의 의미는 ‘조직을 배신하면 죽음뿐’이라는 말이다. 회식 등의 자리에서 건배사를 외치는 잔을 든 사람이 하는 일종의 선창구호다.

#“네, 형님” 화답

잔을 든 사람이 “조배죽”이라고 외치면 같이 잔을 든 나머지 사람들은 ‘예, 형님’이라고 화답하며 경쟁적으로 목청을 높였다.

말 그대로 어디 조폭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코미디 같은 말이 지금 제주사회에 회자되는 중심단어가 됐다. 내편만 있고 네 편은 없다는 의미의 ‘조배죽’은 수장에 대한 절대충성을 맹세하는 상징어다.

이 ‘조배죽’이라는 구호로 특정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사람들이 특정 후보를 위해 선거전에 뛰어들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 때문에 일부 인터넷 언론 등은 이 ‘조배죽’의 유래는 물론, 나아가 ‘조배죽’이 과거 어떻게 사용됐으며, 이들의 행태가 어땠는지 소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구태로의 회귀’라 외치고, 다른 편은 ‘편가르기’라고 격하게 맞서고 있다. 자연스럽게 일반 유권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면서 제주도지사 초반 선거전 ‘핫 이슈’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들을 짚어보면 이 ‘조배죽’이라는 건배제창의 구호가 공직사회와 무관치 않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지방정부인 제주도라는 공무원 조직에서.

#역사의 퇴행

지방자치는 제주사회를 분명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바꿨다. 관료가 중심이던 제주사회의 무게중심이 유권자인 사회구성원들로 옮겨갔다. 이는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행정의 대민서비스질 향상으로 이어졌다.

반면 사회구성원들의 투표로 지방정부의 수장이 된 도지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절대권한’을 가졌다. 특히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과거 제주도지사의 눈엣가시였던 시장 군수들마저 없어지게 되자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권한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여기서 ‘제왕적 도지사’가 나왔다. 자율과 개방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명령과 복종이 꿰찼다.

이 과정에서 ‘제주 판 3김’으로 상징되는 폐단이 등장했다. 선거 때 마다 공직사회의 줄서기가 반복됐다. 공직사회의 편가름은 곧 제주사회 구성원들까지 내편과 네 편으로 갈라놓았다.

당연히 그 폐단이 현실로 나타났고, 때문에 ‘제주판 3김’은 도민들의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 이들이 제주의 미래역사가 돼서는 안 된다는 민의(民意)의 단죄다. 그런데 기억의 저편에 있던 ‘조배죽’이 선거전 전면에 등장했다. 역사의 퇴행이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조배죽’은 소리만 요란할 뿐 실체는 가물가물 하다. 당당하게 나타나 최소한의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데 음습한 곳에서 ‘주인’행세를 하려 꿈틀대는 양상이다.

콩깍지가 돼 선량한 사람들의 착한 눈을 덮으려 한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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