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치’ 이데올로기 허물다
‘인간의 가치’ 이데올로기 허물다
  • 김경호 기자
  • 승인 2018.04.27 0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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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톡] '타인의 삶'... 도청 과정에서 깨닫는 양심·자유남북정상회담 열린 마음이 중요
영화 '타인의 삶' 중에서 도청장치로 피아노 연주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비즐러 모습

‘난 그들의 삶을 훔쳤고, 그들은 나의 인생을 바꿨다.’

분단된 동‧서독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4년 냉전시대. 당시 동독의 냉혈 비밀경찰인 ‘슈타지’(정보국 감시원)가 당대 최고 극작가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청하는 과정에서 자유와 양심을 깨닫게 되는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풀어낸 영화다.

2007 아카데미 외국어상을 수상한 최고의 독일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수작으로, 감사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 사이에서 이념적 이데올로기보다 귀중한 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과거 동독의 독재 정권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친 서독 성향이 확대되는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막기 위해 국민들의 삶을 대대적으로 감시하기 시작한다. 정보공개가 사라졌다. 동독은 국민들을 감시하기 위해 비밀경찰 ‘슈타지’를 통해 “모든것을 알아내라!” 10만명의 감청요원과 20만 명의 스파이를 양성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신념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던 냉혈인간 정보국 감시원 비즐러는 동독 최고의 인기 극작가 드레이만과 그의 연인이자 여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드레이만을 체포할만한 단서는 찾을 수 없고 오히려 그와 크리스타로 인해 감동과 사랑을 느끼며 인간적으로 끌리기 시작한다.

특히 영화 속 장면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의 소나타' 라는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며 슬픔을 달래던 남녀 주인공의 모습은 압권이다. “레닌이 이 곡을 끝까지 들었더라면 과연 혁명이 일어났을까?” 라고 묻는 드레이만과 칠흑 같은 어둠 한 가운데에서 헤드폰을 쓰고 그 목소리를 들으며 또 다른 진짜 주인공 ‘타인의 삶’을 엿듣는 비즐러…. 도청장치로 피아노 연주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그의 얼굴.

어느덧 그에게 드레이만과 크리스타는 단순한 감청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보호해야 할 가치를 지닌 인물이 돼버렸다. 타인의 삶 속에 침투해 파멸을 일삼던 그는 인간의 가치를 느끼고 왜 자유를 갈망하는지 깨닫게 된다. 완벽한 시나리오와 탄탄한 연출, 그리고 긴장감을 더 하는 감동의 반전, 여기에 비즐러의 심리적 표정연기는 웰메이드 영화의 정석을 보여 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통일된 독일에서 우편배달부를 하며 평범한 삶을 사는 비즐러가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드레이만 책을 보는 장면. 여태껏 내가 본 최고의 엔딩장면이 아닐까 감히 말 하고 싶다.

오늘 남북정상이 만나는 현실에서 통일의 신기루 같은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생존자 보다 사망자가 많은 이산가족들 상봉이라도 재개되고, 평화의 문을 여는 첫 단초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남과 북이 누구도 부정 할 수 없는 한민족이라는 것과 이념은 변화되고 무너질지라도 민족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옛 독일의 베를린 장벽과 같은 물리적인 벽은 없지만,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지금 우리는 마음속 냉전시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허물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드릴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김경호 기자  soulful@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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