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그린치, 제주는 무한한 은혜를 입었다
맥그린치, 제주는 무한한 은혜를 입었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4.2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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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고인은 4·3 사건과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제주도에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오셨다. 성이시돌 목장을 설립해 제주의 가난을 떨쳐내고자 하셨고 병원, 요양원, 유치원 등 복지시설과 신용협동조합을 세워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고맙고 사랑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패트릭 J.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의 선종을 애도하면서 보낸 조전의 일부다. 맥그린치 신부가 23일 오후 선종했다. 향년 90세.

맥그린치 신부는 더할 나위 없이 척박하고 가난했던 제주에 말 그대로 희망과 가능성의 빛을 보여주고 이를 실현시킨 사람이다. 때문에 지금도 제주가 맥그린치라는 사람을 만났다는 그 자체가 영광이었고 하늘의 선택이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맥그린치 신부는 60여년 전 ‘4·3’과 한국전쟁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한창이던 제주 땅을 찾았다. 제주를 선택했던 이유는 자신의 고향인 아일랜드와 환경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맥그린치 신부는 한림지역에 터를 잡자마자 축산기반을 다지고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했다. 당시 아일랜드 등지에서 들여온 개량 돼지를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이게 시작이 돼 지금의 한림 양돈산업을 자리 잡게 했다. 때문에 그를 가리켜 ‘푸른 눈의 돼지신부’라는 애칭이 따라다녔다. 그의 제주사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목장 사업을 기반으로 1300여 명의 여성을 고용하는 한림수직도 설립했다. 주민들이 높은 사채이자에 허덕이는 것을 보곤 신용협동조합을 설립 했다. 1962년 제주도 최초이자 농촌 지역 1호, 전국 7번째인 한림신협의 시작이다.

맥그린치 신부는 또 죽음을 앞둔 가난한 병자들 위해 마지막 사업으로 호스피스 병원을 선택했다.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일컫는 막사이사이상을 비롯해 적십자상, 제주도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에는 고국인 아일랜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맥그린치 신부에 대한 장례미사는 한림읍 금악리 성이시돌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내일(27일) 오전 10시 봉헌된다. 장지는 이시돌 글라라 수녀원 묘지다. 맥그린치 신부의 선종을 애도하는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정파와 종교를 떠나 그를 기린다.

아무리 종교적인 신앙심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태어난 고향이 아닌 타국에서 해당 지역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다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더더욱 1950년대 제주는 주민들의 생활환경이 열악할 대로 열악한 오지나 다름없는 외진 섬이었다. 그런 제주에서 맥그린치는 자신의 무한희생을 통해 제주사람들의 삶의 질을 끌어 올리고, 나아가 이들에게 가능성을 선사했다. 제주 입장에서 보면 더없이 귀한 은인을 만난 셈이다. 이제 그가 떠났다. 만나면 헤어지는 게 세상의 이치지만, 그가 제주에 쏟았던 열정과 사랑은 잊지 말자. 제주가 그로부터 입은 은혜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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