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풍화기(春風和氣)
춘풍화기(春風和氣)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4.2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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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용. 수필가

[제주일보] 아침에 거미줄에 이슬이 맺히면 날씨가 좋다고 하더니 이런 날씨를 두고 일난풍화(日暖風和)라고 하나보다.

날씨가 따스하고 바람마저 싱그럽다. 전농로 벚꽃 축제 길엔 빛이 드리워져 하얀 눈이 덮인 것 같아 눈이 부시다. 벌들은 노래하며 벚꽃이 선사해준 꿀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고, 나비들도 더불어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긴다.

축제장엔 낮인데도 벌써 취객들이 시를 읊으며 흥취를 더한다. 새 생명으로 돋아난 봄꽃들이 스스로 건사해 온 은혜를 모두가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죽은 땅에서도 라일락이 자라고 추억과 정념이 뒤섞여 잠든 뿌리가 봄비로 깨어난다.”로 시작되는 영국의 시인 토머스 엘리엇의 ‘황무지’ 란 시를 떠오르게 한다.

지난겨울은 우리를 얼마나 움츠리게 했던가. 그래서 이봄은 더욱 우리를 환희에 빠져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복숭아꽃, 자두꽃이 활짝 피어난 들의 풍경도 참으로 아름답다.

그래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빗대서 봄에는 꽃이요, 가을에는 달이라 하여 ‘춘화추월(春花秋月)’이라 했다.

봄은 생명과 출발 그리고 희망의 계절이다. 앙상했던 나무에도 새순들이 새 생명으로 돋아나 희망을 갖고 삶을 출발한다. 겨우내 잔뜩 움츠렸던 우리네의 심신(心身) 또한 어떠한가. 따스한 온기와 더불어 움트는 생명의 기운을 받으니 자연적으로 기력이 돋아나 한결 힘이 솟아난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춘추위 속에 움트는 봄의 소리를 세 가지 움직임으로 설명했다. 동풍이 불어 언 땅을 녹이는 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는 것이 셋째다.

우수경칩이 지나면서 농촌에서는 짝을 찾는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다.

집집마다 처마에선 지지배배 제비들이 이른 봄을 알린다. 사람들도 그동안 만나고 헤어진 인연된 사람들과의 경험했던 추억들도 이 계절에 떠오르게 된다.

도시를 벗어나니 흙냄새와 풀냄새가 둥둥 떠다닌다. 유채꽃과 개나리가 어우러진 곳엔 온통 노란 물감으로 자신들을 뽐내고 있다.

따사로운 봄의 기운과 함께 계곡의 흐르는 맑은 물소리도 청량한 기운을 안겨준다. 좁은 바위틈을 앞 다투어 세차게 내려가는 물줄기는 보기만 해도 절로 가슴이 시원하다. 바위에 누렇게 말랐던 이끼도 어느새 녹색으로 갈아입는다. 저만치 보이는 바다도 하늘과 맞붙어 은빛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야말로 호각지세(互角之勢)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생동감이 넘치는 계절, ‘春’. 내년에도 봄은 오겠지만 올봄은 다시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추호(秋毫)의 후회 없이 보내야 하리라.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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