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아프다
4월은 아프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4.24 18: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채바다.고대해양탐험가/하멜 리서치 코리아 대표

[제주일보] 4월이 오면 온종일 몸져 누우셨던 어머니. 지금은 천상에 가셨다. 4·3으로 두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어머니의 4월은 아프다.

이 세상에서 가장 몹쓸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4·3의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두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그 아픔 혼자 짊어지고 가셨다.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어머니가 이 세상에 한 둘뿐이랴.

해마다 4월을 맞으며 나도 어머니 따라 70년을 넘게 살았다. 그 아픔의 땅에, 비극의 현장에 일생을 이어가고 있다.

내 유년 시절은 이데올로기를 모르고 자랐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이 땅에 이처럼 아픈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됐다. 매일처럼 어머니의 마르지 않는 눈물을 보면서 알았다. 매일 눈물로 살았던 어머니가 입을 조금씩 열면서 4·3의 푸른 상흔을 알았다.

세상에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 눈물을 보며 자란 나의 유년은 4·3 유족이라는 이름으로 얼룩져 있었다.

호적에 붉은 줄이 왜 쳐져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다. 연좌제라는 딱지가 어떻게 나의 이름표에 붙게 됐는지 조차 까마득하게 몰랐다. 한 참 후에 두 형을 4·3 때 잃은 것을 알고부터 어머니의 눈물을 알게 됐다.

주인공 없는 제삿날 밤에야 당신께서 차려 놓은 두 아들의 제사상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고 알았다. 당신이 죽은 후에 가슴에 품고 살았던 두 아들의 제삿날을 기억할 것인가에 소망이 기도가 있었다.

어머니 4월이 이토록 가슴이 메이고 또 메이고 막힌 줄을 모르고 나는 살았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야 늦깎이 철이 들었다. 철이 들자 어머니는 이 세상을 뜨셨다.

이제야 어머니의 그 눈물을 알겠다. 어머니, 이제 천상에서라도 눈물을 그치고 그 아픔을 잊으세요.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새 세상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화해와 용서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머니 가슴에 묻어둔 4·3의 비극과 이데올로기 장벽들이 무너지는 아침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그 아픔의 눈물을 닦을 때입니다. 아픈 역사는 희망의 역사로 바뀌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 빈 자리는 새 희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통금 사이렌 소리가 겨울밤의 고요를 깼던 어제들은 먼 옛날의 기억으로 사라졌듯이 저토록 어머니 가슴을 울렸던 세상이 조금씩 눈을 뜨고 환하게 밝아오고 있습니다.

어머니, 아픈 4월은 이제 용서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저 푸른 창공에 비둘기들도 새로운 비상을 서둘고 있는 듯 합니다. 어머니, 이 4월을 따뜻하게 감싸고 안아주세요. 어제의 4월들은 가고 새로운 내일의 희망의 4월로 이 봄날을 화사하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나의 4월도 한층 가벼워 졌습니다. 어머니따라 붉어졌던 서러움들을 떨쳐 내고 있습니다. 동백꽃 붉게 피고 졌던 어제들과 손 잡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어제의 어머니 4월은 나에게도 아픈 4월이었습니다. 아픈 역사는 기억하되 유산으로 물려 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로지 희망과 미래의 역사에 문을 열어 줘야 할 순간입니다. 어머니의 손수건이 마를 날이 없었던 어제들. 이제 두 형이 없는 자리는 후손들이 채워 갈 것입니다. 귀신 없는 제사를 지냈던 어제의 아픔들을 씻을 때가 도래했습니다.

남 몰래 혼자 밤낮 없이 적시던 눈물의 사연을 이제 세상이 알고 그 눈을 조금씩 뜨고 있습니다.

나의 4월은 4·3 유족이라는 딱지를 훈장처럼 달고 다녔던 어제들을 이제는 내려놓게 됐습니다. 저희도 용서 앞에 용서를 해야 하겠습니다. 두 형을 먼저 떠나보낸 죄로 유족이라는 훈장을 내려 놓을 때가 됐습니다. 이 땅에 화해와 평화의 제단이 마련 돼 있습니다. 잠시 이 제단에 오시어 용서를 받으세요. 지상에서는 어머니를 마중하기 위해 붉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머니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4월이 가고 5월이 오고 있습니다. 어머니 오시는 길에 아픈 4월은 가고 이제 5월이 오고 있습니다.

어머니, 이 아픈 4월을 용서하십시오. 화해의 두 손을 잡고 이 나라를 예전 처럼 사랑해 주십시오. 어머니!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