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받는 민주주의 : 댓글 조작과 가짜 뉴스
위협받는 민주주의 : 댓글 조작과 가짜 뉴스
  • 제주일보
  • 승인 2018.04.2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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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수 제주대 관광개발학과 교수·논설위원

[제주일보]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의 파장이 심상치 않다. 집권여당 국회의원의 공모 의혹에서 촉발된 특검 수용의 압박이 경찰의 사건파악 사과발표로 더욱 거세지고 있다. 어쨌든지 사건의 전모를 빠짐없이 밝히고 불법적 혐의를 투명하게 처리해야 할 공정 수사가 세간의 화젯거리다.

이번 댓글 조작의 파문은 국내 인터넷 포털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네이버와 다음의 여론 왜곡 책임으로까지 불거지고 있다. 댓글 부대는 물론이고 검색수를 조작하는 프로그램 거래와 인공지능이 적용된 값 비싼 ‘댓글봇’의 활용까지, 나날이 커지는 여론 조작의 징후를 외면하고 묵인 또는 방조해 온 잘못이 크다.

이것은 뉴스와 댓글로 사용자를 자사 사이트에 오래 붙잡아 광고 단가를 올리고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는 영업수법에만 골몰해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언론사별 뉴스 게재와 뉴스토픽 선정으로 사실상 언론사 창구역할을 하고 있는 네이버가 언론으로서의 책임을 하나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굉장한 아이러니다.

2007년 정부는 일일 방문자 수 20만명 이상 사이트와 국가기관에서 본인확인을 의무화하는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시행후 악성 댓글이 줄지 않았다는 ‘실효성’ 논란에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한다는 의견이 가세하면서 2010년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에 글을 쓰거나 읽으려면 본인 확인을 받도록 하는 ‘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을 선고했다. 판결의 이유는 인터넷 실명제가 “이로 인해 불법 정보가 의미있게 감소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6년 여가 지난 요즘, 여론의 향배는 인터넷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악성 댓글과 편가르기식 여론몰이 작태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기보다 깨끗한 인터넷 환경조성이 먼저라는 취지에서 ‘댓글 실명제’ 부활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이처럼 여론이 뒤바뀐 까닭은 인터넷 실명제가 폐지되면서 자유롭고 공정한 인터넷 토론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했지만 막상 현실은 너무나도 딴판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모욕성 악플과 정치적 선동에 더해 거짓 정보가 범람하고 토론의 실체가 왜곡되는 혼탁한 환경을 보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인터넷 여론의 자정기능이 상실될지 모른다는 시민의식들이 모이며 꾸준하고 확연하게 세력을 쌓아왔다. 그리해 ‘댓글 하나에도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책임정신의 구현을 강조하는 것이 오늘의 세태다.

인터넷 포털상의 댓글 조작이나 악성 댓글로 인한 폐해에 못지않게 각종 정보통신 플랫폼에서 가짜 뉴스나 허위 게시물이 무차별 유통되는 피해 또한 심각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가짜 뉴스의 연간 피해액을 30조900억원으로 추정한 바 있다.

카카오·네이버 등 국내 포털업체가 업계 자율로 가짜 뉴스를 삭제하거나 또는 계정을 차단할 수 있도록 약관 조항을 고치고 있는 반면, 구글·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외국계 기업의 호응은 여전히 부진하다. 특히 유튜브와 페이스북은 ‘방송’으로 규정되지 않아 방송법의 제재를 받지 않으며 가짜 뉴스 규정이 없어 제재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인터넷 포털과 SNS 확산은 과거의 소수 과점형 여론 형성을 배척하고 시민사회 수평적 여론 형성과 참여 기회에 기여하는 획기적인 민주주의 토양으로 칭송돼 왔다. 그러나 개개인의 자율과 참여가 촉진돼 분산 대중형 구조로 이끌 것이란 긍정적 전망에는 비안개가 자욱하다.

특정 소수의 댓글 조작이나 가짜 뉴스 유통으로 바야흐로 민주주의 체재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경보음이 요란한 가운데, 헌법 개정에 앞서 특단의 방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를 귀담아 듣고 ‘드루킹 댓글 조작’이란 시련부터 잘 정리해 나가는 것이 우리 정치권의 시급한 사명일 것이다.

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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