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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당사와 불탑사가 고즈넉이 마주 앉은 길65. 제18코스(제주원도심-조천올레)-삼화포구~닭모루 3.5㎞
제주일보 | 승인 2018.04.23

[제주일보] #원당봉

삼화포구에서 출발해 원당봉 입구로 가다 보면, 불탑사 5층석탑 안내판과 함께 세 개의 절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태고종 원당사와 천태종 문강사, 조계종 불탑사이다. 표고 170m, 둘레 3411m의 그리 크지 않은 오름에 3개 종파의 절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 이 오름이 평범한 곳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서쪽에서 보면 남북으로 봉우리 세 개가 이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원당(元堂)’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원나라 기황후(奇皇后)가 ‘왕자를 얻으려면 바닷가 삼첩칠봉을 이루는 곳에 절을 세워 기도하면 뜻이 이루어진다’해, 원나라 땅을 다 뒤져 찾은 곳이 아니던가. 당시 제주는 원나라 직할이었다.

원당봉의 형성과정을 보면, 주봉의 대형 분화구에서 나온 용암의 유출에 의해 커다란 말굽형 화구가 이뤄졌고, 용암유출구의 전면에 크고 작은 3개의 구릉이 형성되면서 6개의 봉우리가 생겼다. 봉우리는 주봉을 비롯 망오름, 도산오름, 앞오름, 펜안오름, 동나부기, 서나부기 등 일곱이다. 올레길은 원당사와 불탑사만 거친다.

 

#불탑사 5층석탑

불탑사에 자리한 5층석탑은 제주에 현존하는 유일의 고려 석탑인 점이 인정돼 1993년에 보물 제1187호로 지정됐다. 제주현무암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과도 일맥상통한다. 전에 좁은 공간에 있을 때는 제법 크고 우람해 보였는데, 원래 절터를 확보해 넓혀 놓으니 좀 작은 느낌이 든다. 그걸로 보면 사람의 눈도 정확하다고 할 수 없겠다.

탑의 높이는 약 4m 정도인데, 각 층의 탑신과 옥개를 하나의 돌로 조성한 점이 특징이고, 1층 기단에서 5층 탑신에 이르는 동안 급격히 좁아지면서 탑의 체감 비율을 극대화시켰다. 현무암이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뒷면을 제외한 기단면석에 안상(眼象)을 새긴 걸 제외하고는 문양을 넣지 않았고, 네 귀퉁이를 살짝 들어 올려 상승효과도 노렸다.

지금 불탑사는 고려시대 원당사 터에 세운 절이다. 원당사는 세 차례 화재로 일부 소실되었다가 1914년 안봉려관 스님이 보수해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불탑사로 고쳤다. 그 후 4․3때 폐허가 된 불탑사는 이경호 스님이 재건하고 양일현 스님의 중창으로 지금의 위용을 갖추게 됐다.

 

# 신촌가는 옛 길

불탑사에서 나와 동쪽으로 조금 가다가, 올레길은 왼쪽으로 꺾어 오솔길로 이어진다. 그 길로 들어서면 보리밭. 맥주보리는 어느덧 이삭을 높이 세우고 누런빛을 띠어간다. 옛날 같으면 보릿고개인데, 요즘 아이들은 그 뜻을 알기나 할까? 보리밭을 지나면 바로 ‘신촌 가는 옛길’로 삼양에 사는 사람들이 신촌에 제사가 있는 날, 곤밥을 먹기 위해 오갔던 길이란다.

 

‘원당사와 불탑사가 고즈넉이 마주앉은 길/ 기증편 떡구덕 등에 지고/ 어멍 손심엉 식게 먹으러 가던 길/ 열무 이파리 아삭아삭 씹히는 길/ 밭담 위 늙은 호박까지/ 펑퍼짐하게 두런두런 옛말 나누는 길/ 물마루 건너온 등 굽은 바람이/ 이마를 톡 치고 가는 길/ 수런수런 수련 사는 남생이못/ 가끔 그렇게 흔들려도 좋을 길/ 길섶 억새들 배웅 받으며/ 한 번쯤은 어린 덕구가 밥차롱 허리춤에 차고/ 돌아보고 돌아보며 걸었음직한 길’ -김수열 ‘신촌가는 옛길’ 모두

 

#시비코지에 이르는 길

굽이굽이 옛 길을 돌아 삼양과 신촌을 잇는 큰 길로 나왔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대도로는 올 12월이나 돼야 완공된다고 한다. 주변은 보리밭과 무밭들이다. 동산에 서있는 물탱크에 그려놓은 민속화가 주변 경치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무값이 안 나가는지 캐는 작업은 하다 중단됐고, 무에서 장다리가 솟아 하얗게 꽃을 피웠다. 한쪽 밭에서는 묵은 비닐을 걷어내고 새 비닐을 덮으며 수박과 밤호박을 심고 있다.

아는 체 인사를 하고는 몇 구비 돌아 바닷가로 나가니, 물가 바위에 웬 시비가 서 있다. 그래서 ‘시비코지’라 하나보다. 다가가 사연을 읽어본다. 채바다 시인의 쓴 글은 ‘이성환 영전에 바친다’로 시작되고 있다. ‘바다를 좋아하던 이야/ 바다를 밤낮없이 새색시처럼 껴안고 살던 이야/ 바다를 꽃밭처럼 거닐더니/ 바다를 그림처럼 아끼더니/ 이제 바다를 실컷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후략)’ 1955년에 태어나 1995년에 갔으니, 40년 세월만 살고 일찍 바다로 간 사연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 닭모루 정자에 앉아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데, 조금은 젊은 아줌마가 쓰레기를 줍고 섰다가 나를 보더니, ‘어디 불편한 건 없습니까’하고 말을 걸어온다. ‘내가 좋아 나선 길이어서, 불편 안 불편 못 느낀다’고 대답하고 보니, 좀 그렇다. 그래 수고한다며 쓰레기 줍는 이유를 물었더니, 사실은 길 안내를 하는데 사람이 없으니까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란다. 조천읍에 배속된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며 봉사한다고 하니 참 고마운 분들이다.

인사를 나누고는 고기 낚는 사람들을 보며, 평일인데 갯바위에서 유유자적하는 저 분들은 뭘 하고 사는 사람인지 또 궁금해진다. 가서 물어보기도 그렇고 해서 얼른 닭모루의 나무정자에 올라 막걸리 한 사발 따라 놓고 주변을 둘러본다. 오름 분화구에서 솟아올라 냇물처럼 흘러 해안에 이르러 굳어버린 울퉁불퉁한 바위들과 깨어진 돌로 겹겹이 둘러친 밭담과 보리, 유채꽃 등이 어울려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4월이 가기 아쉬운 듯 쪽빛 바다에 흰 물결을 줄줄이 풀어낸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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