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세월을 품은 한방인들의 '애서'
150년 세월을 품은 한방인들의 '애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4.19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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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손익(醫宗損益 1868)
의종손익(醫宗損益) 속지와 서문

[제주일보] 세월이 깃든 묵은 책과 선조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고물(古物)에 관심이 많은 탓에 길가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헌책방이나 골동(민속)점 등은 빠지지 않고 둘러보는 편이다. 우리 제주에도 생각날 때마다 가끔 한 번씩 드나드는 곳들이 있고,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하루에 한 번쯤은 오늘도 문을 여셨나 궁금해서 찾게 되는 곳이 있다.

제주에서 골동이나 민속품 등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제주 골동계의 대모(大母)’로 통하는 분이 좌정하고 계신 곳이 있다. 우리 책방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라 지나던 길에 궁금해서 한 번 들렸다가 이제는 아예 ‘풀방구리의 쥐’ 신세가 되었다.

대모가 좌정하고 계신 곳답게 그 곳에서는 우리네 옛 것을 좋아하는 많은 분들과 조우할 수 있다. 그 곳을 통해서 이런 저런 분들과 좋은 인연을 맺게 되었고, 세월을 품고 있는 다양한 고물들과 만나게 되었다. 얼마 전에도 잠시 들렀다가 막 입수된 고서들을 그 자리에서 모두 인수했다. 대부분 통감(通鑑)이나 경서(經書)의 낙질본이었지만 그 중에 눈에 띄는 두툼한 책이 있었다.

조선 후기의 한의사 황도연(黃度淵 1807~84)이 지은 '의종손익(醫宗損益)'이었다. 저자는 호가 혜암(惠庵)으로 철종에서 고종 초기까지 서울 무교동에서 개업하여 명성을 떨친 한의사이다. 그는 본서 외에도 '부방편람(附方便覽)'(1855), '의방활투(醫方活套)'(1869) 등의 저술이 있다.

이 책은 원래 본편 12권 6책과 부록 1책 등 모두 7책으로 구성된 목판본 의서(醫書)지만, 이번에 입수된 책은 본편 6책을 합본해서 1책으로 장정한 것으로 부록 1책(藥性歌)이 빠진 낙질본이다. 맨 앞에 있는 속지에는 1868년(同治戊辰)에 간행되었다는 판권이 있어서, 올해로 간행된 지 꼭 150년이 된 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중정방약합편(重訂方藥合編) 속지와 서문

저자는 본서의 범례에서 ‘의서가 너무 많아서 학자들이 그 종지(宗旨)를 알기 어렵고’, ‘'동의보감'은 우리 의학계에 익숙하지만 명목이 너무 상세하므로 임상(臨床)의 지침서로 이용하는데 편리하도록’ 번잡한 부분을 삭제하고 간결하게 재구성했음을 밝히고 있어 이 책을 저술한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또한 105종에 달하는 인용서목을 제시하고 기존의 의서에서 인용한 것은 그 근거를 병기하였고, 자신의 경험이나 민간의 속방(俗方)도 추가해서 각각 '증'(增)과 '속방'으로 표시해서 이용에 편리함을 주었다. 부록인 ‘약성가’는 뒤에 저자의 아들인 황필수(黃泌秀)가 간행한 그의 유고(遺稿)인 '방약합편(方藥合編)'(1885)에도 재수록되었는 데, 생약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해 당시의 생약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그의 저술이 가진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실제 임상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실용성에 있다. 이 실용성 때문에 '방약합편'의 경우 ‘돌팔이들을 많이 양성했다’는 오명을 들을 정도로 오랜 기간 한방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이 책들과의 인연을 맺게 해 주신 분이 요즘 이런 저런 사유로 병원 출입이 잦으시다. 두 분 모두 쾌차하셔서 풀방구리에 드나드는 이 작은 ‘쥐’를 오래오래 지켜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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