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의 정체성 찾아내고 지켜내야 할 때”
“농촌마을의 정체성 찾아내고 지켜내야 할 때”
  • 제주일보
  • 승인 2018.04.18 1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안순 ㈔제주도 농어촌체험휴양마을협의회장
① 올해로 환갑을 맞은 저청중학교. 1999년 3월 21일부로 폐교가 결정이 됐었으나 지역주민들의 학교살리기로 안정됐다. ② 1958년 학교로 인가된 저청중학교의 모습. ③ 지금은 환갑을 넘겼거나 근접한 나이가 되었을 50년전 조무래기 아이들.

[제주일보] 시간의 흐름은 너무나 정교하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속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전역을 앞둔 장병에게 시간은 너무나 더디며, 대입 수능을 앞둔 수험생이나 시간제한이 있는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짧거나 길게 다가온다.

우리가 얘기하는 시간은 23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초했다고 한다. 그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등속도(같은 속도)로 흐르는 ‘지금’의 무한연속을 말한다고 한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통해 동양철학관에서는 개인의 사주와 팔자를 논할 수 있고, 메이저리거로 야구팬들을 웃고 울리는 류현진의 등판시간을 예고하며, 유렵에서 우리 민족의 발재간을 보여주는 손흥민의 축구 경기시간을 알려준다. 또한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의 종명을 고하는 순간까지도 시간에 의해 기록된다. 우리가 호흡하는 시공간에서 어느 누구도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느 새 필자가 끄적거리고 있는 이 칼럼이 50회째를 맞았다. 글쟁이도 아니고 필력이 있는 것도 아니며 뛰어난 학식을 가진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농촌에 대한 엄청난 철학으로 무장돼 있지도 않다. 본지에서 칼럼 게재 제의가 왔을 때 무심코 대답했고 첫 회를 쓰고 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얄팍함과 가벼움 때문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제는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열 번만 더 하자’며 스스로 독려해 50회를 채웠다. 50회의 흐름 속에 필자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포말의 맨 끝,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그것에 불과한 것을 느끼면서 간절함을 떠나 절망감마저 드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9번째보다는 10번째에, 49번째보다 50번째에 더 가치를 두는 기질이 있는 것 같다(사실은 똑같은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우리 속설은 그 뜻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인 듯하다.

49년 전 7월 20일 필자는 아버지가 심어놓은 탱자나무 밭 한가운데 서 있었다. 당시 감귤묘목을 생산하는 농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수천평의 탱자나무 밭에서 온 동네 젊은이들에게 온주밀감 생산을 위한 접목기술을 가르쳤다. 감귤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대학나무’라고 불리며 영원히 큰 수익을 보장할 것 같았던 게 온주밀감이다.

그날 필자는 달로 쏘아 올린 미국의 아폴로 11호를 볼 수 있을까 하고 눈을 씻고 하늘만 쳐다봤다. 하늘은 청명했지만 날씨는 더웠다. 성질 급한 어머니가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는다”고 성을 내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하늘을 쳐다봤다. 그로부터 벌써 50번째 해를 맞고 있다.

그 당시 우리 농촌은 소가 밭을 갈고 밭마다 감귤나무가 심어진 모습은 아니었다. 밭담으로 둘러싸인 한 마지기 남직한 밭에 쌀보리와 고구마, 그리고 조가 재배되고 있었다.

점심 때 차롱에 담긴 보리밥과 너무 짜서 껍질을 한 켜씩 벗겨 먹어야 했던 마농지(풋마늘장아찌), 개미장(된장)에 찍어먹는 물외 등이 아련히 기억난다. 너무나 맛이 있었다.

학교와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에서 등·하교 하던 조무래기들은 책을 보자기로 둘둘 말고 어깨에 메고는 오고 가는 길에 지네잡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지천에 널린 고사리를 꺾기도 하고 보리수확 철 가장 맛있는 상동을 따먹으며 온 입을 새까맣게 만들기도 했다.

그때의 추억들이 가슴 저리게 그립다. 도시민들에게도 우리의 농촌이 가슴 설레는 그리움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1970년대 들어와서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마을공동체사업을 시작하는 계기가 만들어지면서 조금씩의 변화를 체험하기 시작했다. 당시 절대 올 것 같지 않았던 21세기는 ‘지금’의 연속된 순간의 반복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철부지가 아폴로 11호를 보고자 하늘을 쳐다봤던 그때의 ‘지금’과 조그마한 스마트폰에 온 세상의 정보가 가득한 오늘의 ‘지금’, 감귤나무를 심으면서 백년대계를 계획했던 50년 전의 ‘지금’, 오렌지 수입 관세 철폐로 심각한 위기를 맞은 제주 만감류 재배농가들이 한숨 짓는 요즘의 ‘지금’까지 규모나 규격 모두가 똑같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1998년 본업과 가정마저 뒤로한 채 귀향 후 처음으로 공동체 유지를 위해 나섰던 시간, 폐교 결정이 난 저청중학교를 살리기 위해 ‘저청중 살리기와 돌아오는 농촌만들기’ 사업을 진행해 학교를 유지할 수 있게 했던 그 시간도 ‘지금’의 연속으로 이제 만 20년이 됐다.

올해는 많은 젊은 인구가 유입돼 저청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정원이 초과됐다. 사립유치원으로 아이들을 보내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즐거운 비명일 수 있지만 아직도 우리 농촌은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다. 50년 전 결코 오늘을 예측할 수 없었듯이 앞으로 50년 아니 10년 후 우리 농촌이 어떤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

이미 농촌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우리의 정체성은 찾아보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찾고 지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만들어 내야 한다.

농촌 역시 도시 못지않게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지금’의 지혜롭지 못한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환경들이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부분들을 극복해 내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되는지 명제들을 분명히 해야 할 ‘지금’인 것 같다.

필자가 농촌에서 활동했던 누적된 시간들 때문에 최고의 전문가인 것처럼 했던 많은 언행들을 반성해 본다. 필자의 관점이 옳은 것인 양 전국 각지의 농촌리더들에게 침을 튀기면서 강의 했던 수많은 말들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와 얼굴이 화끈거린다.

중앙정부, 지방정부가 진행했던 수많은 사업들에 필자의 관점을 접목하고자 했던 얄팍함이 한없이 부끄럽다. 필자는 과연 국가가 만들어 놓은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간주되는 농촌에 대한 폭력(?)에 맞서서 농촌리더들과 소통하며 농촌마을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고 진정으로 그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치를 추구했었나? 심각하게 반성해 본다.

50회째를 맞으며 논조에 관계없이 칼럼을 게재해 준 제주일보와 홈페이지에 게재된 칼럼에 가끔은 ‘좋아요’를 눌러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황송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1부 끝>

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