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의 색감이 살아있는 ‘역사 깊은 올레길’
자연 그대로의 색감이 살아있는 ‘역사 깊은 올레길’
  • 제주일보
  • 승인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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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제18코스(제주원도심-조천올레)-별도연대~삼화포구 2.7㎞
삼양3동 해안에서 본 원당봉과 삼양동

[제주일보]  # 삼양역사 올레길

별도연대에서 출발, 골목길을 걸어 나와 오솔길로 삼양지경에 이르렀는데, 오각형 간판이 눈에 띈다. ‘해안누리길’이라 해 ‘삼양역사올레길’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내용을 살핀 즉, ‘해안누리길’은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재단이 선정한 걷기 좋은 해안길’이다.

그 중 ‘삼양역사 올레길’은 제주도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구간으로 도심지와 산림지역, 그리고 현무암 고유의 색감을 느낄 수 있는 검은 모래 해수욕장까지 오직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관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환해장성 일부구간이 포함된다고 했다.

이 구간을 정리하면, 삼양선사 유적지~원당봉 산책로~문강사~불탑사~삼양1동 해안로~노천 용출수~검은모래 해변~해녀 탈의장~환해장성~삼양해변을 잇는 약 10㎞다. 삼양동은 역시 ‘유적이 많은 곳이구나’ 생각하면서도 그 중에 ‘해녀 탈의장’을 넣은 의도가 궁금하다.

 

삼양해수욕장에 세워진 오영호 시비

# 새각시물과 원(垣)

지붕을 묶는 집줄을 나일론으로 대신한 초가집을 지나니, 이번엔 초가지붕 무늬 건축 재료로 지붕을 마감한 집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확인을 못 했는데, 가볍고 독특해 보인다.

골목길을 걸어 나와 벌랑포구에 이르렀을 때, 눈에 띈 구조물은 ‘새각시물’. 생김새가 여자의 몸매를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하며, 옆에 이 마을 출신 정인수 시인의 시를 곁들였다.

 

‘벌랑 새각시물에서/ 술잔을 들면/ 술잔에 파도가 친다.// 서동 파도는 벌랑!/ 중동 파도는 거문여!/ 동동 파도는 사근여!// 파도가 잦아들면 다시/ 누각 아래로/ 새각시 멱 감는 소리…’ -정인수 ‘벌랑 새각시물’ 모두.

 

‘벌랑(伐浪)’은 삼양3동의 바다를 일컫는 말로 속칭 ‘버렁’의 한자어 표기이다. 시에 나타나는 거문여와 사근여는 차례로 섯동네, 중동네, 동동네 바다의 지경을 구분해 그곳에 이는 파도를 노래한 것이다.

마침 썰물이어서 원담이 드러났다. 버렁원과 검은여원, 도고리원이 차례로 나타난다. 이런 원에서는 주로 멜(멸치)을 잡았다. 밀물에 들어와 있던 고기떼가 썰물이 되어 나가지 못하면, 이를 발견한 사람이 ‘멜 들었져, 멜!’하고 외치는데, 이때 너나없이 족바지나 바구니를 가지고 잡았다. 재수가 좋으면 농어나 숭어도 걸려들었다고 한다.

 

정수장 담장에 그려진 모래찜질 모습

# 방파제에 그린 그림들

이어 나타나는 방파제. 삼양수원지를 보호하기 위한 시멘트 구조물로 올레길은 바닷가 쪽으로 통한다. 기다란 벽에서는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 속으로 돌고래가 뛰어오르고 갈매기가 난다. 수백만 호가 훨씬 넘을 거대한 벽화인데 생생하게 잘도 그렸다.

도로 쪽의 그림은 사뭇 구체적이다. 수원지 정문에서 시작된 그림은 빨래하는 장면으로부터 아이들이 몸 감고, 헤엄치고, 해산물을 잡고, 말 타기 하고, 고무줄 뛰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어른들은 물 길어다 항아리에 붓고, 맷돌로 갈고, 검질 메고, 물질 가는 장면들까지 이어지다가 마지막엔 바구니 한 가득 해산물을 잡아들고 나오는 그림으로 끝난다.

삼양수원지를 소개한 글에는 ‘이곳 가물개물은 물맛이 좋고 수량이 풍부해 감수라 불리면서 선주민들은 물론 지금의 주민들이 삶과 함께 했다.’고 썼다. 하루 평균 3만5000t을 취수하는 수원지의 본격적인 개발은 1978년의 가뭄에서 비롯되어 1982년에 제1수원지, 1984년에 제2수원지가 개발 완공되었고, 이후 양질의 물을 제주시민들에게 널리 공급하고 있다.

 

# 삼양해수욕장과 모래찜질

삼양동 흑사구층은 향토유형유산 제1호로 지정된 바 있는데, 우도의 검멀레, 하효동의 쇠소깍, 하례리 공천포 등에도 잘 발달해 있지만 규모면에선 이곳이 제일이다.

검은 모래는 신경통에 효과가 있어 예부터 많은 휴양객들이 모래찜질 하러 몰려들었다. 모래를 파헤쳐 몸을 묻은 뒤 머리만 내밀고, 파라솔로 얼굴에 비치는 볕을 가리며 찜질하는 그림이 재미있다.

바닷가로 나가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돌아 나오는데, 오영호 시인의 시비 ‘삼양동 연가’가 눈에 띈다. 마을의 어제와 오늘이 오롯이 담긴 시다.

 

‘새벽 범종소리에 눈 뜬 텃새들이/ 불탑사 5층 석탑 천년의 빛을 물고/ 원당봉 한 바퀴 돌아 삼양동 문을 열면/ 옛마을 선각자들 화합의 손을 잡고/ 삼양의 깃발을 올린 선주민 원형움집엔/ 넘쳐난 한라의 푸른 정기 거리마다 빛나네// 호미 같은 해안가로 춤추며 달려온 파도/ 올레길 걷고 있는 나를 보고 하는 말/ 찌든 몸 검은 모래로 찜질하고 가라는…/ 순한 귀 열어놓은 정 많은 이웃들이/ 일궈낸 터전마다 피어나는 사람향기/ 바다엔 사랑의 꿈을 낚는 통통배가 떠 있네’ -오영호 ‘삼양동 연가’ 전문.

 

# 삼화포구에서

잘 다듬어진 방파제를 따라 삼화포구에 이르렀다. 작은 배 몇 척이 가지런히 메어져 있는 포구 안쪽에서 할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다. 옆에 할아버지 한 분이 낚시를 하다가 바로 눈앞에서 커다란 숭어 한 마리를 낚아 올린다. 기분이 좋아진 할아버지에게 고기를 좀 보여 달랬더니,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까지 취해준다.

풍화작용으로 많이 닳아버린 ‘신항 개수’ 비석이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갑자년 5월 5일’이라 한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쌓은 것이겠다. 당시 여러 가지로 어려웠던 시기인데 아직도 단단한 걸 보니, 예산이 많이 들어간 듯 출연금 명단이 꽤 된다. 옆에 같은 시기에 쌓은 듯 오래 되고 반듯한 여탕과 남탕으로 미루어, 이 동네 삼양이 역사 깊은 양촌임을 잘 증명해주고 있었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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