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그날은 까마귀의 울음도 멈췄다
제주4.3...그날은 까마귀의 울음도 멈췄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4.1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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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죽음(소나무, 1988)
사진 왼쪽 까마귀의 죽음(소나무, 1988), 오른쪽 까마귀의 죽음(도서출판 각, 2016) 표지

[제주일보] 1978년 발표된 소설가 현기영님의 ‘순이삼촌’이 국내 최초로 제주 4.3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라면, 그에 20여 년 앞서 일본에서 발표된 작품들이 있다. 1957년 문예잡지 '분게이슈도(文藝首都)'에 실린 제주 출신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金石範 1925~ )님의 ‘간수 박서방(看守朴書房)’(8월호)과 ‘까마귀의 죽음(鴉の死)’(12월호)이다.

제주 4.3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낸 최초의 소설인 이 작품들은 1962년 발표된 ‘관덕정(觀德亭)’ 등과 함께 1967년 신코쇼보(新興書房)에서 ‘까마귀의 죽음’을 타이틀작으로 한 작품집으로 발간되었지만 독자들의 관심을 크게 받지는 못했다. 그 후 1971년 일본의 저명한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에서 다시 출판되면서 독자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당시 제주 4.3을 금기(禁忌) 시하던 국내 사정상 1988년이 되어서야 제주 출신 작가이자 번역가인 김석희(金碩禧)님의 번역으로 소나무에서 출판되었다.

이 작품집에는 모두 다섯 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앞서 언급한 세 편의 소설이 제주 4.3 속에 살아 가는 주인공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통해 당시의 비극적인 상황을 투영하고 있다. 색시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제주로 온 황해도 머슴 출신 노총각 간수 박서방이나 다른 사람의 부스럼 속 고름을 입으로 빨아서 낫게 해주고 먹고 사는 부스럼 영감, 겉으로는 군정청 통역으로 일하지만 실상은 무장대 스파이로서 애인이 처형 당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신분을 속여야만 하는 정기준 등 각 작품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제주 4.3의 비극적인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76년부터 문학잡지 ‘분가꾸까이(文學界)’(文藝春秋)에 ‘가이쇼(海嘯)’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해서 20여 년의 집필 끝에 1997년 탈고한 제주 4.3을 주제로 한 장편소설 ‘화산도(火山島)’로 유명한 저자의 시작도 바로 이 작품집 ‘까마귀의 죽음’이다. 1925년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나 한 평생 제주 4.3 관련 작품 집필에 매진해 온 저자가 ‘나의 작품들 가운데 대표작의 위치를 차지할 만큼 내가 사랑하는 작품’이라고 꼽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을 번역한 김석희님의 표현대로 ‘목에 가래가 걸린 듯이 고통스러운 그의 문체’는 독자들로 하여금 약간의 고통을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번 손에 들면 술술 읽히는 ‘쉬운’ 책은 아니지만, 다 읽고 나면 저자 특유의 글맛에 중독되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독자들이 즐겨찾는 현기영님의 ‘순이삼촌’과는 그 내용 상의 결과 문장의 맛이 다른 이 작품집에도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 책의 번역본이 출판된 지 올해로 꼭 30주년이 된다. 그 동안 절판되어 헌책방에서 조차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이 책이 다행히 2015년 도서출판 각에서 판형을 바꾸어 문학평론가 김동윤 제주대 교수의 작품해설을 붙이고 기존의 번역을 조금 손보아서 다시 출판되었다. 제주 4.3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일독 하시길 바란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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