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제국에 패퇴한 왕의 恨 서린 옛 메와르 왕조 수도
무굴제국에 패퇴한 왕의 恨 서린 옛 메와르 왕조 수도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4.1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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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시아 문명의 원천 신들의 나라 인도를 걷다
(36)역사적 도시 품은 서부 인도를 찾아서<9>-치토르가르①
멀리서 본 치토르가르의 성채 전경. 미세먼지 때문인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치토르가르는 16세기 우다이 싱 2세가 무굴 제국에 패해 떠나기 전까지 메와르 왕조의 수도였다고 한다.

[제주일보] 우다이푸르를 돌아보고 다리를 건너 나오다가 우연히 한국에서 온 한 여학생을 만났습니다. 올해 대학을 진학하고 바로 인도여행길에 올라 벌써 35일째 인도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 신기해서 그 학생에게 여행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세히 듣기로 했지요. 어린 나이에 혼자서 이렇게 여행을 다녀도 괜찮은지, 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지, 지금껏 다닌 인도 여행지 중 어디가 좋았는지를 알아봤답니다.

이런 질문을 하면서도 저 어린 여학생이 설마 한 달을 넘게 힘들다면 힘든 인도 곳곳을 다녔다는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그 여학생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해맑은 웃음에 예쁜 얼굴의 여학생은 “아직도 가 볼 곳이 많아 부지런히 돌아보고 내년에 다시 올 계획”이라며 “선생님도 좋은 여행하세요”하며 바삐 일어나네요.

순간 저는 머리가 띵한 기분이었답니다. 저도 지금껏 오지여행을 남 못지않게 다녔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저 여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이 느껴집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자그마한 배낭 하나가 짐의 전부라는 그 여학생은 음식에 전혀 어려움 없이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틀이 멀다고 김치 타령을 하는 우리 팀을 슬쩍 뒤돌아보게 됩니다.

여학생의 여행담을 되새기며 다시 길을 떠납니다. 라자스탄에서 가장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치토르가르로 멀고 먼 길을 나섭니다.

치토르가르 성채에는 ‘람뿔(Rampol)’이라고 하는 거대한 돌로 만들어진 입구가 있다.

우다이푸르에서 112㎞ 떨어진 감베리(Gambheri)강이 흐르는 곳에 있는 치토르가르는 8세기 라지푸트족 시소디아(Sisodia) 가문의 바파 라왈이 처음 건설했으며 16세기 우다이 싱 2세가 무굴제국에 패해 우다이푸르로 천도하기 전까지 메와르 왕조의 수도였다고 합니다. 이틀간 돌아본 우다이푸르가 바로 치토르가르가 함락되며 천도한 도시였다네요.

옆에 앉은 김 선생이 몇 년 전에 치토르가르를 다녀왔는데 사진 찍을 만한 곳이라며 기대하랍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버스가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더니 멈춰섭니다. 치토르가르 입구이니 성 위에 올라가보라네요. 가이드의 설명을 뒷전으로 흘리며 성 위로 올라서니 뿌연 안개가 덮여 시야가 좋지 않습니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곳곳이 마치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같은 분위기입니다. 건물이 허물어져 쌓여있는 것 같군요.

성채 안으로 들어서자 곳곳에서 허물어져 가는 유적들을 복원하고 있다. 그 중 옛 우물터인 듯 보이는 유적이 눈에 띄었다.

미로같은 길을 따라 바쁘게 돌아다니며 높은 곳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 없을까 하고 찾았는데 마침 복원 공사를 하고 있는 자그마한 건물이 보였습니다.

올라갈 수 있도록 아주 작은 계단도 만들어져 조심스럽게 올라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데 등에 진 카메라 배낭이 뭔가에 걸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었습니다. 4~5m 아래 보수 공사하면서 쌓아둔 돌들이 깔려 있는 곳으로 ‘쿵’하고 떨어졌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설명을 듣던 관광객 두 사람이 황급히 달려와 일으켜줘 정신을 차려보니 무릎과 팔꿈치, 손등에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픈 것보다는 카메라가 걱정돼 손에 든 카메라가 혹시 부서지지 않았을까 하고 이리저리 살폈습니다. 걱정하고 달려온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봅니다.

미안하다고 손짓하고 셔터를 몇 번 눌러보니 다행히 카메라는 이상이 없는 것 같군요. 항상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다니자는 생각을 하면서도 새로운 곳에 가면 순간 그런 생각을 잊어버려 이런 사고를 당한답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넘어질 때 대처능력이 떨어져 더욱 이런 사고를 많이 겪습니다. 가족들은 해외, 특히 오지를 갈 때마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다니라”고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니 온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쑤십니다. 가족이 있었다면 엄살이라도 부리고 싶지만 지금 이 순간은 빨리 정신차려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순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진을 못 찍었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왜 이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아마도 몸에 밴 직업 근성 때문인 것 같군요.

주변에 몰려있던 사람들도 가고 절뚝거리며 사진을 찍기 위해 치토르가르 요새를 천천히 돌아보고 있는데 깜박 잊어버린 것이 있네요. 몇 시까지 어디서 모인다고 했는데 너무 급히 움직이다보니 자세히 듣지 못했습니다. 빨리 일행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서둘기 시작했습니다.

치토르가르는 라자스탄에서 가장 슬픈 역사를 간직했다고 알려져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몰린다.

바쁜 생각에도 주변을 보니 치토르가르의 유적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부지런히 사진을 찍으면서 한편으론 일행을 찾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오늘따라 이곳으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많아 가는 곳마다 학생들로 꽉 찬 느낌입니다.

아까 떨어질 때 넋이 나갔는지 정신이 혼미하고 또 무릎과 팔꿈치에서는 피가 흐르는지 쑤시고 아프네요. 빨리 걷기도 힘들어 잠시 쉬면서 두리번거립니다. 멀리 빨간 재킷 하나가 보이는 것이 우리 일행인 것 같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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