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사’-‘술사’-‘감사’-‘봉사’
‘밥사’-‘술사’-‘감사’-‘봉사’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8.04.0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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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오래 전 일이지만 ‘박사(博士) 위에 육사(陸士), 육사 위에 여사(女史)’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1980년대 5공(共) 시절, 육사 출신인 전두환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가 막후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는 소문을 빗댄 풍자였다.

그로부터 30여 년. 요즘은 얘기가 달라졌다. 박사 위에 ‘밥사’가 있고, 밥사 위에 ‘술사’가 있다는 것이다. 또 술사 위에 ‘감사’, 감사 위에 ‘봉사’가 있다고 한다.

‘밥사’는 동료들을 위해 기꺼이 밥을 사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술사’는 술을 사면서 남의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을 일컫는다.

‘감사’는 매사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이고, 이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남과 더불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인간사가 그렇듯이 똑똑한 것보다 남에게 조금 나누고 베푸는 사람이 더 좋은 평판(評判)을 얻고 인기가 있다.

▲요즘 지방 선거판에 출마한 예비후보들에 대한 평판도 다르지 않다.

유권자인 시민들의 평판을 들어보면, 박사면 뭐할 것이고, 좋은 학교를 나오면 뭐 할 것이냐는 것이다.

평판은 대개 과거 몸 담았던 직장이나 함께 해온 정치권 동료, 학교 동창, 이웃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제주사회가 좁아서인지 그 내용이 아주 시시콜콜 세세한 얘기들이 많다.

“술은 커녕 밥 한 번 사는 것 보지 못했다” “부려 먹기만 하고 보답할 줄 모른다” “(평소에) 고맙다는 인사도 없다”는 등 어찌보면 사소한 것 같지만 ‘밥사’ ‘술사’ ‘감사’ 행적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 시민들이 비판하는 것은 거의 모든 예비 후보자들이 ‘봉사’했다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없다는 점이다.

‘그 사람 잘 났다’고는 하지만 과거 동료, 동창, 이웃들의 얘기는 한마디로 이기주의이자 ‘짠돌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다 잘 먹고 잘 살다가 선거 때가 되니 아는 척하며 “표 달라고 한다”는 비아냥은 기본이다.

▲“세상의 평판은 그대의 성공을 칭송하지 않고 그대의 과실을 험담한다.”

요즈음 얘기가 아니라 17세기 작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박민수 역)속 글이다.

책엔 이런 내용도 있다.

“백 번 잘하기 보다 한 번 실수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찬란한 태양은 아무도 보려 하지 않지만, 지는 해는 모두 보려 한다”

세상살이의 근본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일까.

예비후보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라는 것이 성공을 칭송하지 않고 지난날 섭섭함이나 과실만을 험담하는 것 같다.

이런 험담을 듣는 사람은 당연히 억울하고 할 말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남들 하는대로 따라하거나 결과에 집착, 과정을 무시하다가 이런 평판을 얻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남의 주목과 관심을 끄는 자리에 올라서려면 평소 주위를 챙기고 부끄럽지 않도록 생활하는 게 우선이다.

흉을 보는 사람들을 원망하기에 앞서 우리 모두 성공에만 매달린 나머지 사람살이의 기본인 정직과 원칙, 양심 지키기에 무심했던 건 아닌지.

▲청명·한식에 이어진 지난 주말.

아버님 묘소로 가는 산길, 새벽에는 눈발이 흩날리더니 해가 뜨자 정말 봄 눈 녹듯이 사라졌다. 봄의 부름에 화답이라도 하듯 대지는 생기가 돋고 힘이 뻗쳤다.

봄의 자연을 마음 곁에 두고 사는 고향 사람들에게서 배시시 흘러나오는 미소가 편안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게다.

‘봄날 같은 사람’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겠지.

문득 봄이 이토록 고마울까 싶어졌다.

수녀 시인 이해인은 ‘봄날 같은 사람’을 이렇게 썼다.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시인이 그려놓은 ‘봄날 같은 사람’이 바로 ‘밥사’- ‘술사’- ‘감사’- ‘봉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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