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 잊혀져가는 속도
첫사랑이 잊혀져가는 속도
  • 이승현 기자
  • 승인 2018.04.05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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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톡] 애니메이션 영화 '초속 5센티미터'
'빛의 마술사'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깊은 여운 전달
영화 스틸컷

[제주일보=이승현 기자] 분홍빛으로 아름답게 온 거리를 수놓았던 벚꽃들도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시들어 모습을 감춰가고 있다.

사람과의 인연도, 누군가와 이뤘던 사랑도 언젠가 꽃처럼 시들며 떨어지며 상실해가는 날이 올 것이다.

"벚꽃 잎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래."

도쿄의 한 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다카기와 아카리는 서로에게 힘이 돼주는 특별한 존재다. 그러나 둘은 집안 사정으로 인해 졸업과 동시에 각자 다른 지방으로 헤어지게 된다. 중학생이 된 다카기와 아카리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애틋한 감정을 이어가고 다카기는 폭설로 전차가 지연되는 와중에도 아카리가 사는 곳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다카기는 고등학생이 된다. 한편 그를 좋아하는 동급생 카나에는 고백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아 망설이며 그의 주변을 맴돈다.

벚꽃의 계절, 첫사랑의 시작과 끝을 아련하게 그려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초속 5센티미터(2007년 개봉)'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게 된 대표작 중 하나다.

'빛의 마술사'라고 불릴 정도로 그의 작품은 모두가 사진만큼 뛰어난 배경 작화를 선보이며, 감성적인 플롯으로 어느 작품보다 깊은 여운을 전달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초속 5센티미터' 이후에도 애니메이션 영화 '언어의 정원', '너의 이름은' 등으로 호평을 받으며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초속 5센티미터는 데뷔작 '별의 목소리'와 첫 장편애니메이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로 이어지는 SF요소를 접고 현실의 일상을 무대로 해 첫사랑이 추억이 되고, 새로운 사랑마저 어느새 사라져가는 상실의 감정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벚꽃 이야기, 코스모너트, 초속 5센티미터' 총 3화의 단편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다카기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보여주며 흘러가는 감정 선에 따라 어느새 그들에게 공감하고 가슴아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열차 건널목 맞은편에서 우연히 스쳐지나간 그녀를 발견하지만 그 순간 건널목을 가로지르는 기차가 지나간다. 한참 뒤, 맞은편에 그녀가 없음을 확인하고 그는 흩날리는 벚꽃과 함께 오히려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어쩌면 '초속 5센티미터'의 뜻은 아름답게 꽃잎이 떨어지는 그 순간이 천천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마음속에서 첫사랑이 잊혀져가는 속도가 아닐까.

이승현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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