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제주4·3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4.0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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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호.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동국대 영상대학원 부교수

[제주일보] 필자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이 많이 되뇌었던 말 중에 ‘화병’이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에 의하면 ‘화병’은 ‘명치에 뭔가 걸린 느낌 등 신체 증상을 동반하는 우울증의 일종으로 환자가 자신의 우울과 분노를 억누르기 때문에 발생한 정신 질환’이라 한다.

한의학이나 전통적인 개념에서는 이런 분노의 감정을 ‘화(火)’의 개념을 써서 설명한다.

원인은 스트레스지만 그 증상의 출현에는 한국 특유의 문화적인 배경이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현재 정신과의 진단 체계(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for Mental Disorder, fourth edition, DSM-IV)에서는 ‘화병’을 문화 관련 증후군(culture-bound syndrome)의 하나로서 정의하고 있다.

T.S. 엘리엇(Eliot)이 ‘황무지(The Waste Land)’란 연작시에서 너무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짧은 봄날이라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그 4월에 제주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화병’을 앓았다.

제주의 ‘화병’은 소리를 낼 수도 누구를 욕할 수도 없는 속앓이 신음이다. 씨족사회의 전통이 남아있어 ‘한 다리 건너면 다 괸당(친척)’으로 엉키고 성키니 그 트라우마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고통이었다.

또 하나, 본래대로 하나의 조국이 되기를 바랐고 그래서 분단국가가 아닌 통일조국이 되길 바랐을 뿐인데 그걸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데서 ‘화병’은 더 커졌다.

당시 대부분의 주민에게는 이상향 건설로만 들렸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설령 믿었다한들 이데올로기, 신념의 차이가 집단학살의 이유가 되는가? 인류전쟁사를 다 돌이켜봐도 이 때를 제외하고는 이데올로기(Ideologie) 전쟁은 없었다.

6·25 전쟁에서도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게 만든 건 이데올로기 차이다.

믿는 것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전쟁은 있어왔지만 대체로 그건 이민족(異民族)간 싸움이다.

6·25 전쟁이나 제주4·3에서 우리 민족끼리, 이웃끼리 서로를 죽일 만큼 이데올로기 차이가 있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점이나 정확히 알고 죽고 죽였을까? 이데올로기 싸움이 맞긴 한가?

현재의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소련이란 두 강대국 사이의 냉전체제 속, 세계 양분이라는 프레임이 아니면 이 비극을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비극이 발생한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100% 우리의 힘으로 광복을 맞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반도 땅에서 민족상잔의 전쟁을 벌여도 막을 힘이 없었다. 그럼에도 유감이다. 그래서 ‘화병’이 더 난다.

제주4·3은 1970년대까지 근 20여 년간 금기어였다. 1980년대 들어 겨우 말할 수 있었고 이 역시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리고 2003년에야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가 있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평가는 오락가락 하며 이제 70년을 맞았다. 그리고 제주4·3, 70주년의 화두는 제주4·3의 전국화, 세계화이다.

‘화병’은 마음의 병이다. 가장 좋은 치유방법은 그 원인의 객관화다. 거기에 선결되어야 하는 게 내 마음의 병을 알리는 것이다.

전국의 국민과 그리고 세계인에게, 아프지만 알아야 할 상처를 공유하고 서로 보듬으면서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질서를 여는 게 ‘화병’의 올바른 치유법이다.

제주의 ‘화병’은 이제 전 국민과 세계를 향한 ‘화해와 상생’, ‘인권과 평화의 정신’으로 거듭나려 한다.

전 국민과 세계인의 따뜻한 마음과 관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제주4·3은 우리의 역사입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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