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감사위의 학교감사 반대 명문 잃었다
도감사위의 학교감사 반대 명문 잃었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3.29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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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도내 고등학교 8급 공무원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물품 대금 4여 억원을 횡령한 사건은 지역사회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액수도 크거니와 돈을 빼돌리는 저간의 과정이 참으로 황당했다.

말단 직원이 막대한 공금을 빼돌렸는데도 학교장이나 학교 행정실장은 물론이고 도교육청도 새까맣게 몰랐다. 1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일선 학교 회계정리 기간이 아니었다면 이 공무원의 ‘도둑질’은 계속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파문이 진정되기도 전에 도내 모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서도 물품 구입 예산을 횡령한 정황이 나타나 도교육청이 감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감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서 도대체 얼마나 해 먹었는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예산 도둑에게 회계를 맡겨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됐다.

8급 횡령 사건의 경우를 보면 회계 시스템 자체가 무너졌다. 조달 물품이 납품된 후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결재를 받고서 무통장 입금 방식으로 대금을 빼돌렸다고 한다. 심지어 횡령 사업비를 또 다른 사업비로 돌려막기식으로 횡령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직속 결재 라인인 행정실장과 교장 등은 수십차례 관련 결재 서류를 받아봤지만 ‘깜깜’이었다는 것이다. 회계 규정상 한 달에 한 번씩 회계 장부와 통장 잔고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게 돼 있지만 이것도 무용지물이었다니 더 할말이 없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 유사한 사건이 터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 사건 규명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제주도교육당국은 그동안 깨끗한 공직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해 왔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사건이 터진 뒤 감사팀을 꾸려 조사를 하고 단속을 벌이지만 그 때 뿐이다. 일선 학교는 최일선의 교육기관이다. 투철한 교육관과 공복(公僕)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결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비리(非理)는 전염성을 갖는 법이다. 횡령하고도 들키지 않는 다른 공무원들을 보면서 나도 횡령하고, 비리를 저지르고도 끄떡없는 상사를 보고 비슷한 비리를 아무렇지않게 저지르는 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예산이 횡령되고 있는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비리다. 제주교육이 여러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지만 막가는 공무원의 부패를 근절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번 사건은 그 후유증이 작지않을 것 같다. 제주도교육청의 자체 감사는 전문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비리에 적극적으로 칼을 대려는 의지조차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따라서 그동안 이중 감사를 이유로 제주도 교육청이 제주도감사위원회의 일선학교 감사를 반대했던 명분이 퇴색하게 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철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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