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세월'을 보듬다
'끝나지 않은 세월'을 보듬다
  • 김경호 기자
  • 승인 2018.03.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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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톡]'한국 독립영화 역사에 남을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영화 '지슬'이유없이 희생된 원혼 위한 진혼곡
동광리 큰넓궤에 피신한 주민들이 '지슬'을 하나씩 손에 들고 허기를 달래고 있는 영화 속 장면.

‘희미한 램프 불빛 사이로 어렴풋하게 서로의 얼굴과 음식을 비추는 식탁에 둘러앉아 차를 따르고 서로에게 감자를 권하는 사람들…. ’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1885년작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고흐는 ‘감자 먹는 사람들’을 통해 정직한 노동의 의미를 나타냈다. 그림 속 농부들처럼 제주 사람들도 ‘지슬(감자)’을 먹었다. 정직한 노동을 통해 소박한 식량을 얻었을 그들. 그러나 1948년 4월 3일 그들은 큰 슬픔 속에 잠겨야만 했다.

작게는 경찰의 발포, 크게는 정치적 이념 갈등으로 시작된 제주4·3은 소박하게 지슬을 먹던 죄 없는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제주도 최대의 비극이다.

이를 다룬 영화 ‘지슬’은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미군정 소개령을 시작으로 3만명이 넘는 주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참극을 흑백의 영상미로 풀어내고 있다.

영화와 현실은 그다지 멀리있지 않다. 제주4·3 당시 경찰이었던 누군가의 아버지, 억울하게 식구들을 잃고 홀로 남은 어머니, 책까지 만들어 자서전을 내고 제주4·3을 후세에 알리고 계시는 지인까지.

제주도민이라면 지금도 이런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주변에서 접할 수 있다.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무엇이 원인이었고 무엇이 진실인지 복잡한 논쟁을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억울하게 아직도 묻혀 있는 민간인 희생자 유해는 눅눅한 흙속에서 꺼내야 하고, 넋이라도 달래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영화는 학살하는 군인들과 도망치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군인들은 “빨갱이를 잡는다”며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죽인다. 아들을 위해 감자를 준비한 어머니도 군인들에 의해 감자만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마을 처녀 순덕은 군인에게 잡혀 총살을 당한다. 영화 말미의 임산부는 동굴에서 출산한 아기를 남기고 죽는다.

그리고 군인들 쪽에서는 또 다른 죽음이 발생한다. 침묵하던 군인 정길이 학살에 참여했던 상관 김 상사를 단죄하며 말한다. “이제 사람들 그만 죽이세요”.

이 영화는 위령제인 셈이다.

정직한 노동으로 얻은 지슬을 먹었던 사람들을 위한 위령제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어째서 적 이었어야 했을까. 영화 ‘지슬’에서는 끝났지만 현실에선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유족들의 세월. 그래서 감독 오멸은 부제를 ‘끝나지 않는 세월2’라고 지었는지도 모른다.

제주4·3 70주년인 올해 전국적으로 4·3에 대한 관심이 전에 없이 뜨겁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이때 우리는 더 많이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서로에게 위로를 전하며 희망을 꿈 꿀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끝나지 않는 세월을 매듭지어야 할 때다.

 

김경호 기자  soulful@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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