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산장’
‘수수께끼산장’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8.03.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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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촛불을 들어라.”

중국 춘추시대 초(楚)나라 수도인 영(郢)에 사는 한 관리가 연(燕)나라 재상에게 편지를 썼다. 이 관리는 밤이라 방 안이 깜깜하자 등불을 들고 곁에서 비추도록 하인에게 명했다. 그런데 서찰을 받아쓰던 사람은 이 같은 순간의 상황을 모른 채 촛불을 들라는 뜻의 ‘거촉(擧燭)’이라는 두 자를 편지에 썼다.

이 편지를 받은 연의 재상은 ‘촛불을 들어라’라는 의미를 멋대로 해석했다. 고사성어 영서연설(郢書燕說)의 출발점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끌어다 맞는 것처럼 억지로 꿰맞춘다는 뜻이다.

열흘전인 지난 20일 오후 제주도의회는 이른바 신화련 금수산장 개발사업의 마지막 관문인 환경영향평가 동의안을 본회의에서 1표차로 통과시켰다. 이 사업은 골프장 부지 인근에 대규모 콘도와 호텔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중국자본 7000여억원이 투입된다.

해당 사업지에는 골프장 부지도 포함됐다. 누가 보더라도 골프장을 활용한 대규모 휴양·숙박시설 개발로 인식되기에 충분하다. 때문에 사업계획서가 제주도에 제출되는 순간부터 ‘꼼수개발’ 논란이 이어졌다.

결국 도의회에서 우여곡절 끝에 1표차로 통과 됐다.

#의문투성이 편법·꼼수 개발

금수산장 개발사업은 자체가 의문투성이고 그 과정은 한편의 미스터리 영화를 보는 것처럼 우여곡절의 연속이다. 우선 이 사업은 ‘골프장을 활용한’ 대규모 숙박시설로 볼 여지가 크다. 제주도는 지금까지 골프장 인접(골프장 용지 포함)한 곳에 대규모 숙박시설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지사의 ‘방침’으로 공개 표명, 정책의 기조로 이어왔다.

그런 상황에서 금수산장 개발사업을 받아들였다. 의문과 의혹이 안 나오는 게 비정상이다. 이 때문에 제주도가 의회에 환경영향평가 동의안을 보내자 수면아래 있던 파열음이 거치게 터져 나왔다.

이 과정에 보인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는 수수께끼 그 자체다. 4명의 도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자신의 이름이 공개될 것이 뻔해도. 이들 중 한명만 빠졌더라도 동의안은 부결됐다. 민주당이 중산간 난개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같은 당 일부 의원은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사업의 부당성을 외쳤다. 반대를 외쳤던 의원은 같은 당 동료들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이 뿐만 아니다. 도의회 의장까지 찬성표를 던졌다. 찬반이 팽팽한 안건의 경우 통상 의장은 표결을 연기하거나 직권으로 상정을 유예하지만 이 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안건을 본회의로 끌어올린 해당 상임위원장은 어찌된 영문인지 본회의 투표엔 불참했다. 의문의 연속이다. 사업자의 치열한 로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 '여야 구분 없이 기득권 정치'

“난개발의 상징과도 같은 금수산장 개발사업의 의회 통과에는 여야 구분이 없었다. 당론과 당적은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았으며 정치인들은 정치적 비전이 아니라 자신의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동의안이 통된 뒤 한 정당의 낸 논평 중 일부다.

제주도는 동의안 통과 후 자본검증을 하겠다지만, 버스 떠난 뒤 손 드는 모양새다. 제주도는 또 앞으로 골프장을 활용한 개발사업은 초기부터 철저하게 검증하겠다고 말했다. 옹색하기 그지없다.

앞에선 ‘입바른 소리’를 곧잘 하면서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엔 딴 소리를 낸 도의원. 시민단체가 반대하고, 자당 소속 도지사 출마 후보들까지 반대하는 등 안건이 중대함에도 당론조차 결정하지 못한 채 갈가리 찢어진 집권여당. ‘콩가루’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이들이 백주에 대로를 활보하고, 소신을 쫓아 올바른 표결을 했다고 떵떵거리는 게 지금 제주다.

3000년 전 ‘촛불을 들어라’라는 글을 받은 연나라 재상은 그나마 이를 ‘밝음을 존중하라는 뜻’으로 해석했지만, 이들은 이조차 알지도 의문이다.

제주 개발사에 또 하나의 검은역사가 덧칠됐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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