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가겠지만
봄날은 가겠지만
  • 제주일보
  • 승인 2018.03.27 20: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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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논설위원

[제주일보] 제주의 봄, 밤 하늘은 유별나게 반짝인다. 파도소리가 님이 찾아오듯 사분사분 다가온다. 별빛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저마다 사랑의 배를 타고 밤 하늘을 수놓고 있다. 여미진 옷고름을 풀어 헤치게 한다. 봄의 밤 하늘은 그렇게 찾아온다. 한라산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장엄한 저녁 노을의 먹구름을 걷어내면서 말이다. 이런 광경은 누구의 몫일까.

#장면1.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기 싫어요/~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지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1988년 최성원이 처음 불렀다. 그렇게 시작된 ‘제주도의 푸른 밤’은 성시경, 유리상자, 태연, 소유 등에 의해 리메이크되면서 많이 불려졌다. ‘봄’하면 가장 생각 나는 노래가 두 곡이 있다. 하나는 ‘제주도의 푸른 밤’이고 다른 하나는 ‘봄날은 간다’이다. 같은 봄을 다루더라도 ‘제주도의 푸른 밤’은 밤에 봄을 맞이하는 것을 노래하고 ‘봄날은 간다’는 제목처럼 봄이 무정하게 가버린다고 말한다.

파도소리가 환상적인 최성원의 곡은 전인권, 조덕환 등 ‘들국화’ 멤버에서 베이스 기타로 있을 때 첫 솔로 음반에 수록된 곡으로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노래는 최성원이 ‘들국화’로 활동할 당시 몸이 지쳐서 아무 생각없이 제주도를 찾았을 때 시작된다. 아는 형집에서 신세지면서 그 딸(푸르매)이 제주의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고 이 추억을 노래로 만들어주기로 약속 하면서 낭만적인 ‘제주도의 푸른 밤’이 탄생됐다. 최성원의 아버지는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최영섭씨이다. 최성원은 평소 아버지한테 칭찬을 받은 적이 없는데 ‘제주도의 푸른 밤’만큼은 무척 사랑받았다고 한다.

#장면2.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1954년 가수 전영록의 어머니 백설희씨에 의해 발표된 ‘봄날은 간다’이다. 이 노래는 애조띤 슬픔을 밑바탕에 깔면서 봄바람, 옷고름, 맹세, 풀잎, 꽃편지 등을 휘날리며 봄의 애처로움을 진득하게 담아내고 있다. 본래 화가였던 작사가 손로원이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난시절 판잣집에 불이 나면서 연분홍 치마차림의 어머니 사진이 불에 타자 그 모습을 그리며 쓴 노랫말에 박시춘씨가 곡을 붙였다. 전쟁이 끝나고 포연이 걷힌 뒤의 하얀 세상을 역설적으로 표현 하기도 한다. 전쟁 직후의 정신적인 피폐를 위로하는 짙은 서정성으로 일찍이 대중의 큰 호응을 받았고, 2003년 시인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애창 대중가요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발표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트롯, 통기타, 록, 창, 재즈 등 다양한 리듬으로 편곡되어 각각 그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들로부터 꾸준히 애창돼 오고 있어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르면서 떠나질 않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이 노래가 야속하게 들린다. 엊그제였다. 한 식당에 저녁 먹으러 갔다. 모자를 푹 눌러쓴 한 노신사가 친구와 술잔을 연거푸 들이키더니 노래 한 구절 부른다.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니(잠시 쉬었다가)~알뜰한 그 맹세 봄날은 간다~” 그러면서 노신사는 취기에 약간 언성을 높인다. “야, 친구야. 봄이 오긴 왔냐? 다음 달부터 날씨가 더워지고 5월말까지 미세먼지가 계속된데, 젠장.” 속으로 생각했다. 봄은 계절적으로 가장 짧지만 혹독한 겨울을 지낸 그 인내만큼은 잊지 말자고. 미세먼지로 짜증이 나겠지만 제주의 봄 향기를 생각하면서 이 계절에 생동하는 ‘알뜰한 맹세’를 한번쯤 해봄직 아니한가. ‘봄이여 간다고 하지 마오. 긴 겨울을 깨고 나왔으니 할 일이 많소이다!’

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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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개 2018-04-26 05:40:51
겨우내 기다렸는데.. 봄이 짧아서 아쉬워요... 좋은 기사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