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고초 겪어야 했던 제주인의 모진 세월 고스란히…
온갖 고초 겪어야 했던 제주인의 모진 세월 고스란히…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3.2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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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18코스(제주원도심-조천올레)-김만덕객주터-칠머리당 2.9㎞
복신미륵(동자복)

[제주일보] #동자복에서 주정공장 터까지

김만덕 객주터를 나와 남쪽 약 100m 거리에 있는 동자복에 가 보기로 했다. 동한두기를 지날 때 들렀던 용화사의 서자복과 짝을 이뤄 제주성을 수호하는 기능을 했던 복신미륵이다. 민속문화재 제1-1호. 인간의 수명과 행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숭배되어 온 동자복은 만수사 터에 있는데, 절이 사라진 후에는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어 마을의 평안과 어로활동의 안전을 기원하는 석불로 자리 잡았다. 집안의 제액(除厄), 육아(育兒)에 효험이 있다 하여 제를 올린다. 두 손을 얌전히 가슴에 모으고 서 있는 석불에 합장하고 길을 재촉한다.

부두 쪽으로 걸어 주정공장 옛터에 이르렀다. 안내 표석에 ‘이곳은 제주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4․3사건 당시 수많은 제주민중들이 끌려와 감금당한 채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던 모진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옛 주정공장 터다’라 새겼다. 사건의 와중에 목숨의 부지를 위해 한라산 일대에 피신했던 주민들은 혹한의 겨울을 야산에서 견디다가 ‘귀순하면 살려 준다’는 군경토벌대의 선무작전에 따라 대부분 순순히 귀순했다. 하지만 용공혐의를 뒤집어 씌워 가혹한 고문이 자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문도 모른 채 산지항을 통해 육지형무소로 끌려가야 했다. 또 한국전쟁 발발 후 예비검속자들을 수용했다가 행방을 알 수 없게 만드는 등 수많은 도민들이 마지막 생존을 향한 몸부림이 서려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옛 주정공장 터

#제주항연안여객터미널

공항이 제 구실을 못하던 시절, 제주부두는 제주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다. 공부하러 오가는 유학생들은 물론, 섬 구석에 처박혀 있던 총각들도 나이가 들면 군대 가고, 처자(處子)들은 방직공장, 물질 갈 때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었다. 부산과 목포를 오가던 황영호, 평택호, 이리호, 가야호, 도라지호 같은 추억의 이름들을 떠올려본다. 2005년에 개축한 이 제2부두는 부산·인천·목포(추자)·여수·완도 노선 승객들이 이용하고, 저 동쪽에 새로 세운 제7부두 국제여객선터미널은 주로 완도 카페리 손님들이 오간다. 칠머리당 옛터로 통하는 긴 계단을 오르며, 양중해 선생이 쓰고 변훈 선생이 작곡한 ‘떠나가는 배’를 흥얼거린다.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임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터져 나오라 애슬픔/ 물결 위로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끊이 사라져 내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뜬 바다를 지키련다….’

 

#사라봉에 오르며

계단을 다 올라간 곳, 칠머리당이 있던 자리의 벽에는 입김을 불어 넣는 영등할망과 굿하는 심방, 그리고 배방선을 띄워 안전을 기원하는 사람들을 그려놓았다. 눈을 돌려 멀리 육중하게 떠 있는 크루즈 유람선을 바라보고 나서 골목길로 접어드니, 그곳에도 젊은 영등할망의 모습과 굿하는 장면이 잘 그려져 있다.

길을 건너 사라봉의 품으로 접어든다. 표고 148.2m, 둘레 1934m의 사라봉은 지금 시민들의 공원으로 꾸며졌으며, 익히 알고 있듯이 영주10경의 하나인 사봉낙조(紗峰落照)를 즐길 수 있다. 오름의 형태는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갖고 있는 분석구, 북쪽에 사라사(紗羅寺)와 산지등대, 남쪽기슭 모충사엔 순국지사 조봉호 기념비, 의병항쟁기념탑, 김만덕 의인 기념비와 만덕관, 동쪽으로는 보림사와 칠머리당 영등굿 전수관이 자리 잡았다.

 

일제 진지동굴

#망양정과 사라봉수 터

건입동 포제단에서 서쪽 계단을 따라 오르는 길 주변에서는 일제 진지동굴들을 쉽게 살필 수 있다. 능선에 오르면 양쪽에 동백나무와 벚나무가 심어져 있고, 체육시설이 곳곳에 늘어섰다. 정상에 망양정(望洋亭)이 자리했는데, 북쪽엔 해안에나 있을 법한 연대(煙臺) 모양의 석축물이 자리했다.

다른 봉수 터에 가 보면 별다른 시설 없이 봉긋하게 솟은 오름 정상에 이중, 삼중의 방화선만 구축해 놓는데, 이곳 사라봉수 터엔 정자를 세우면서 좀 섭섭했는지 새로 깬 돌을 가져다가 연대 모양의 정방형 석축을 쌓아올렸다. 앞으로 세월이 흐른 뒤, 혹 사실이 왜곡될까 두렵다.

 

칠머리당 영등송별제

# 칠머리당 영등굿과 알오름

동쪽 산책길을 내려오면 음수대와 안내판, 화장실이 있고, 그곳을 지나면 바로 알오름의 칠머리당이다. 건입동에서 옮겨온 이 당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울타리나 신목(神木)도 없이 작은 안내판과 굿을 볼 수 있는 계단, 그리고 세 개의 자연석으로 이루어졌다. 왼쪽부터 차례로 해신선왕(海神船王)과 영등대왕 신위, 도원수 감찰지방관과 용왕해신 부인 신위, 남당 하로바님과 남당 할마님 신위다.

칠머리당 신은 부부신 도원수 감찰지방관과 용왕해신 부인이다. 도원수 감찰지방관은 마을의 토지, 주민의 생사, 호적 등 생활 전반을 담당해 수호하고, 용왕 해신부인은 어부와 해녀의 생업, 그리고 타지에 나간 주민들을 지켜 준다고 믿는다. 500여 년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칠머리당굿은 1980년 11월 26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9월 30일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곳에서는 주로 음력 2월 14일에 영등송별제를 치른다.

사라봉과 별도봉이 이어지는 곳에 볼록하게 자리한 표고 96.2m, 둘레 780m의 알오름은 근래 야외 지질조사와 항공사진 판독해본 결과 양쪽 두 오름보다 먼저 형성된 걸로 나타났다. 그 다음이 별도봉이고, 사라봉은 제일 늦은 시기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화산섬 심부를 구성하고 있는 응회암과 화강암편이 쇄설암층에 포획되어 나타난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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