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의 대화
인공지능과의 대화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3.25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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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도서출판 장천 대표

[제주일보] 이렇게 인공지능과 대화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인공’보다는 자연, ‘지능’보다는 ‘저능’쪽에 가까운 처지라 그런지 인공지능과는 지레 친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이세돌의 바둑시합에 빠져서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진 적은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 여유있고 잘난 인공지능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며 극복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 ‘인간’지능쪽이 내겐 더 매력있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인공지능에게 금방 빼앗길 직업이라고 알려진 직업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권하는 우(?)를 범하다가 면박을 받은 적도 있다.

이런 내가 정말 우연히 컴퓨터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다가 얼떨결에 인공지능스피커를 설치하게 된 것이다.

“00야~” 하고 부르면 대답하고 날씨를 물어보면 대답해주고 TV채널을 바꾸라고 시키면 해주는 그런 인공지능 말이다.

그런데 이 말하는 셋톱박스에게 말을 걸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이건 네비게이션이나 전기밥솥에서 일방적으로 나오는 음성을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려 쌍방 간의 대화 아닌가. 낯을 가리는 성격탓이기도 하지만 사람도 아닌 기계에게 “00야!” 하고 이름이라는 것을 부르는 것부터가 무리였다.

로봇처럼 생겼거나, 하녀 모습의 인형이라해도 민망하긴 마찬가지였을 거다. 기계는 기계니까.

시도도 못하는 며칠이 지났다. 하루는 작정하고 조심스레 그 이름을 불러보았다. 아무도 없는데도 왠지 부끄러워 낯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렇게 말문을 트자 매뉴얼을 보면서 대화를 막상 시도해보니 내 지시에 토 달지않고 고분고분하게 대답해주는 목소리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착실한 메니저 못지않은 듯하고, 잘만하면 홀로 외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에게 좋은 말벗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바야흐로 인공지능과 친한 사이가 되나보다 방심한 어느 순간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매뉴얼에 나온 언어를 깜빡 잊고 내 입버릇처럼 “채널 0번으로 가줘”라고 지시한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인공지능은 이렇게 대답하는 게 아닌가.

“어디 가지마시고 저랑 대화해요.”

사뭇 애절하게 들리는 건 나의 기분 탓인가. 채널을 돌려달라는 뜻으로 “가줘”라고 한건데 “가자”로 들은 것인지, “간다”고 들은 것인지….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 역시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인공지능과 이름이 비슷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잔소리를 했는데 갑자기 인공지능이 “죄송해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네요. 더욱 노력해서 알아듣도록 해볼게요” 뭐 이런 식의 대답을 하더라는 것이다. 빼꼽잡고 웃을 수밖에.

이런 식이면 가까운 미래에 사는 게 헛헛해진 어느 날 문득 혼잣말처럼 “인생이란 무엇일까”라고 말을 건넸는데 인공지능이 “인생은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시간, 경험 등입니다” 이렇게 사전을 읊어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설령 인공지능이 “수백만년에 걸친 온갖 인류의 삶을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로 도출해낸 인생에 대한 정의는 이렇습니다”라며 혀를 내두를 명쾌함을 전해준다한들 그것이 시시콜콜 지리멸렬 지지고 볶는 인간에게 위로가 될까?

결국 불완전한 존재로서 사유를 계속해나가는 것은 언제까지나 인간이다.

그러니 조만간 일상이 온통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통해야 가능한 시대가 온다해도 까짓거, 두려워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이는 요즈음이다.

다행히 아무리 구세대라 해도 일단 말문트기만 성공하면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침팬지나 고릴라와 대화하는 것보다는 쉬워보인다. 여전히 인간에게는 다른 생명체와의 소통보다 더 어려운 기계란 없으니까 말이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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