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최신 기술, 오행
오래된 최신 기술, 오행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3.2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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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진 한의사·한의학 박사

[제주일보] 한의학에서는 ‘봄에 風에 의한 병을 주의하라’하였지만 계절가전이 대중화되고 주거환경이 개선되어서인지 요즘 '통계 상 봄 중풍 발생률이 다른 계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고되고 있다. 그리하여 과거 빈약한 보건의료자원으로 질병을 예방코자했던 선현들의 노파심이 현대에 와서 쓸모없다 여길 수도 있었는데, 최근 의료정보와 약의 홍수에 빠진 현대인에게는 선현의 노파심이 오히려 의미 있는 지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봄과 오행을 가지고 선현의 지혜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우리 것에는 요즘 것들과는 다르게 매우 간결, 섬세하면서도 핵심을 관통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오행(五行) 상 봄은 다른 계절에 비해 목(木)의 기운이 강한 계절이다. 목의 기운은 새싹이 돋아나고 꽃봉오리가 터지는 것 같은 활력의 상징적 표현이자 총칭이다. 오행 중 하나가 되면 상생(相生) 상극(相克)이란 관계를 이용해서 다른 오행을 손쉽게 조절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오행이론의 핵심이다. 봄을 목으로 규정한 후 이를 자유롭게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게 한 조상들이 더욱 대단해 보이는 이유는 오행이론이 최근 과학의 연구방법으로 각광받는 빅데이터에 의한 변화 예측법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오행에서는 봄에 질병을 일으키는 외부 원인은 바람(風,) 왕성한 활동량을 보일 장기는 간(肝), 분발해야 되는 신체의 부분은 근육(筋), 삼가야 할 마음은 과도한 분노(怒) 그리고 도움이 될 만한 맛은 신맛(酸)이라 하고 있는데 이를 한의학적으로 하나씩 의미를 풀어보고자 한다.

봄에 중풍을 조심해야했던 이유는 추위에 몸이 움츠러들고 근육이 굳고 혈관탄력이 떨어지는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해 식물에 삼투압이 증가해서 꽃망울을 틔우듯이 인체에도 혈액순환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때 혈관탄력이 더디게 회복되는 분들에게 뇌출혈이 발생하기 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을에 저장했던 영양이 겨우내 소진되고 나서 인체조직이 위축되면서 뇌에서는 뇌경색이 발생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활동도 적었기에 현저히 줄고 뻣뻣해진 근육으로 겨울보다 좀 더 많은 노동을 감당하게 되면서 근육질환도 타 계절보다 보편적이었을 것이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몸이 따르지 않았을 때 쉽게 짜증이 나고 그러다보면 더러 화도 냈을 터이고, 겨우내 습관이 돼 버린 게으름을 해소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의 화가 필요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때 이 모든 것을 생리 단계에서 조절하여 질병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붙들 수 있는 장기가 간이다. 간은 간장혈(肝藏血)이라고 하여 피를 보듬어주는 장기로 핏덩어리라 할 수 있는데 근육과 조직의 경직에 대해 간이 얼마나 피를 저장하고 있으면서 안정적으로 혈액을 나눠줄 수 있느냐가 건강의 관건이 되는 시기가 봄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봄철 푸성귀에서 맛볼 수 있는 상큼한 신맛은 고기의 육질을 부드럽게 하듯이 우리 몸의 경직을 이완시키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오행으로 정립된 결과물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예측되는 결과물과 거의 같을 수밖에 없다. 왜냐면 수천년 동안 인간들이 자연을 관찰하여 수집한 빅데이터 분석의 결과가 오행이기 때문이다. 단지 빅데이터 분석법과 오행이 다른 점은 결과물이 아니라 오행이 좀 더 간단명료하고 세련되며, 막대한 전기가 불필요하기에 슈퍼컴을 소유하지 않은 개인도 원하는 바를 쉽게 분석 예측 활용할 수 있게 해줬다는 점이다. 적게 소비하던 과거 시대의 연장이, 적게 소비해야 되는 현시대를 만나 물 만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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