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야 할 아름다운 섬 제주의 슬픈 역사
우리가 알아야 할 아름다운 섬 제주의 슬픈 역사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3.22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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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삼촌(창작과비평 1978년 가을호)
순이삼촌 표지

[제주일보] 아름다운 제주에 살다보니 일 년이면 몇 번씩 찾아오는 벗들을 맞이하게 된다. 대부분 여러 번 와 본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고, 때로는 처음 오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 온 친구들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제주하면 떠오르는 명소들을 알아서 잘 찾아다닌다.

문제는 좀 와 본 친구들인데.... 뭔가 새로운 걸 찾는다. 그들은 이미 제주의 아름다운 곳은 대부분 섭렵했다고 자신만만해 한다. 그럴 때면 안내하는 곳이 있다. 아름다운 제주 곳곳에 숨어있는 어둡고 아프고 슬픈 역사가 서려 있는 곳들이다.

어떤 이들은 함께 아파하고 슬퍼한다. 어떤 이들은 즐거운 여행길에 굳이 그런 곳에는 왜 가냐며 외면하려고 한다. 그런 친구들에겐 '지금까지 제주의 밝은 면은 많이 봐 왔다니 이젠 좀 어두웠던 부분도 알아야 균형이 맞지’하며 조금은 억지로 끌고 갔었다.

일단 가면 바뀐다. 어두운 건 싫다고 꺼려했던 이들도 한동안 침묵하다가 한숨을 쉬게 되고 끝내는 눈가가 촉촉해 진다. 몇 년 전에 왔던 외국에 사는 친구는 펑펑 울었다. 이 아름다운 섬에 그런 슬픔이 있을 줄은 몰랐다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부끄럽다고까지 했다.

너븐숭이 4·3기념관 옆 옴팡밭에 있는 순이삼촌 문학비 근경

요즘 우리 책방을 찾는 손님의 반 이상은 여행으로 우리 제주에 왔다가 찾아온 분들이다. 그 분들은 대부분 가볍게 여행 중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고르지만, 어떤 분들은 특정 작가의 특정 작품집을 찾는다. 나는 안다. 그들이 북촌의 너븐숭이에서 오는 길이라는 걸....

순이삼촌(창작과비평사 1979) 초판 판권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그 분들이 찾는 책은 1979년에 초판이 발간된 소설가 현기영님의 작품집 ‘順伊삼촌’(창작과 비평사)이다. 타이틀작인 ‘순이삼촌’은 유신(維新)이 한창이던 197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처음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1949년 북촌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을 배경으로, 학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가 자살하고 마는 순이삼촌의 삶을 통해 비극적인 4·3의 실상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집은 당시 금기시되었던 제주 4·3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출판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서(禁書)가 되었다. 10년 후 다시 복간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이다.

올해는 제주 4·3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순이삼촌’이 발표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 도내·외에서 다양한 기념 행사가 진행되고 있거나 예정되어 있지만, 무엇보다 반가운 건 예전에는 한적해서 쓸쓸하기만 했던 관련 유적지에 하나 둘씩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분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어떤 기념 행사나 이벤트보다 더 소중한 일이다.

몇 년 전 필자의 강권(?)에 의해 얼떨결에 들렀던 한 4·3유적지에서 펑펑 울었던 그 친구는 그 다음 해에 온 가족과 함께 우리 제주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스스로 조사하고 준비해서 우리 제주의 아름다운 곳과 함께 슬픈 역사의 현장도 찾아가 아이들에게 자신이 느꼈던 부끄러움을 가감없이 설명해 주었단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이제 ‘순이삼촌’의 영역본 ‘Aunt Suni’(각,2008)를 구해야겠다. 머지않아 제주를 꼭 다시 찾겠다는 그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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