賞을 받은 것도 죄인가
賞을 받은 것도 죄인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3.1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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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제주도교육청 장학관과 중학교 교장 등 평생을 교직에 몸 담았던 A씨는 몇년전 황조근정훈장을 받고 정년퇴임했다.

훈장증, 대통령 박근혜.

이 훈장과 훈장증이 그의 집 건넌방에 있었는데 요즘은 어디로 치웠는지 없어졌다. 어느 날 “어, 박근혜가 저기 걸렸네”하는 말을 들은 이후다. 물어보나마나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가족들은 모른체 한다.

기업인 B씨. 사회봉사 활동이 활발한 그의 사무실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표창패와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받은 표창장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박근혜 대통령 표창패가 간데온데 없어졌다. 요즘은 이명박 대통령 표창장도 눈에 안띄는 곳으로 밀려 놓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표창패를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그 표창패가 요즘 소위 ‘적폐(積弊)’의 표징처럼 보여지는 것 같아 가슴아프다는 얘기였다.

▲훈장이나 대통령 표창과 관련한 사정은 A씨, B씨만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말 못 하고 박근혜, 이명박 대통령 때 받은 훈장과 표창패를 한 쪽 구석으로 치우는 사람들이 많다. 대통령 표창패가 엉뚱한 시선을 끄는 까닭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대선 예비후보시절 난처한 경험을 했다.

군복무 중 제1공수특전여단장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는 사실이 논란에 휘말린 것이다. 당시 안희정 후보측은 5·18과 ‘전두환 표창’을 연계시키려는 듯 “광주와 호남민중에게 사과하라”고 했고, 이재명 후보측은 “공개적으로 전두환 표창장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정말 이런 표창장은 공개적으로 폐기처분해야 하는 걸까.

청년 시절 군대에 다녀오고, 게다가 군 생활을 열심히 해서 지휘관에게 상까지 받았다면 그건 명예롭고 자랑할 일이 아닌가?

▲이런 경우만이 아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하고 ‘5공 청문회’가 열릴 때 일이다. 이른 바 ‘5공 청산(淸算)’ 회오리 속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표창장은 자랑이 아니라 ‘청산 대상’을 가리키는 표징이 됐다.

신문에는 ‘5공 인사’로 표적이 된 사람들에게 예외없이 ‘전두환 표창을 몇 번 받았다’하는 식의 이력서를 붙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이 수여했던 새마을 표창도 같은 취급을 받았다.

마을 일에 땀흘렸던 새마을지도자들은 표창을 받았던 사실을 ‘쉬쉬’했다. 자랑과 명예의 상징이랄 수 있는 훈장이 박탈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12·12 군사반란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관련자, 그들과 가까운 경제인 등 176명의 서훈과 표창이 취소되기도 했다.

청산의 광풍은 공식적으로 취소되지 않은 전두환 대통령 이름 석자가 붙은 것들도 한무더기로 사라지게 했다.

자랑스럽게 간직해야할 대통령 표창패를 이렇게 뒷전으로 숨기는 현상은 분명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누가 뭐래도 상을 받는 것처럼 좋고 기쁜 일도 없을 것이다.

어떤 대통령이 상을 수여하는지는 상관이 없다. 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적(私的) 이익에 봉사하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훈장이나 표창을 받는 경우이다.

예컨대 국정논단 최순실 사업에 공로를 세웠다고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면 그건 심각한 일이 될수 있다.

정권의 사적 이익에 봉사하고 그 대가로 대통령에게서 그걸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복무나 정년퇴직, 사회문화활동, 경제. 체육활동 등 정권과 아무 관계가 없는 맥락에서 표창을 받은 것은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것이다.

수여자의 이름이 박근혜이면 어떻고 이명박이면 어떤가. 훈·포장의 의미는 수여자에게 있는 게 아니고 그 공적에 있다.

상(賞)을 받은 것이 무슨 죄인가.

TV와 신문이 박·이 전 대통령을 비판을 쏟아놓을 때마다 그로부터 받은 표창패가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불편해진다’는 ‘가슴앓이 현상’.

좋게 끝난 대통령이 한 사람도 없는 이 나라에만 있는 ‘과거 청산 돌림병’이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청산’해야할 ‘적폐’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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