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한 장의 차이
종이 한 장의 차이
  • 제주일보
  • 승인 2018.03.1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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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정 제주대 경영학과교수·논설위원

[제주일보] 여유 시간이 있으면 가끔 사라봉으로 운동삼아 나간다. 산에 오르면서 사라봉과 별도봉이 집 가까이에 있다는 자체가 나에게 많은 위안을 준다.

별도봉과 사라봉 사이에 있는 조그만 운동공간이 있는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필자도 여러 운동기구를 번갈아가면서 사용하는데, 어린 아이들이 위험스럽게 달려와 멈칫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운동기구들이 배열되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여기에 운동기구들이 일렬로 배열된 것은 공간적인 제약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운동기구들을 조금 더 한쪽으로 치우치게 배치해 보행구간을 확보했더라면 안전 측면에서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어진 공간이 협소하여 현재와 같은 배치가 적당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공간내의 배열형태에 따라 또 다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안전 위주의 관점에서 운동기구들을 배열한다면, 운동반경이 폭이 작은 순으로 시작하여 안쪽으로 갈수록 운동반경이 큰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은 입구 쪽에는 보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운동기구를 주로 배치하고, 점차적으로 운동반경이 큰 기구들을 배열하는 것이 위험발생의 여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거기까지 갈 사람들의 비율은 낮아져 그에 따라 위험발생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동반경이 큰 기구가 인기가 있고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곳까지 사람들이 가야하므로 더 혼잡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입구 쪽에 운동반경이 큰 기구를 설치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안전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고, 또한 운동하는 사람들도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여건이 된다면 별도의 보행구간을 만들거나 아이들만을 위한 전용 운동기구를 별도의 공간에 설치하는 방안이 더욱 좋을 수도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운동기구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면 인기있는 운동기구를 근처에 설치하고 활용도가 떨어지는 기구는 안쪽에 두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배치의 문제는 붐비는 운동기구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대기 시간이 더욱 길어지거나 혼잡해질 수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공간적 분리를 통하여 혼잡을 줄이거나, 혹은 붐비는 기구와 그렇지 않은 기구간의 조합을 통하여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다. 특히 붐비는 기구인 경우에는 멀리 배치하여 사용빈도를 줄이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지만 아직 적용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와 같이 어떤 관점에서 공간적 배열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그에 따른 영향과 성과는 매우 달라진다.

최근 제주에서 대중교통우선차로제의 설치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우선차로제의 설치도 도로의 이용효율성 관점이냐 대중교통의 원활화 관점이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도로의 이용 효율성을 무시한 채 대중교통의 원활화만을 강조하거나, 반대로 대중교통의 원활화를 무시하고 도로의 이용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방식은 더 많은 논란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도로의 이용 효율성과 대중교통의 원활화를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번 설치된 구조물을 다시 변경할 경우에는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며, 이용하는 사람에게도 많은 불편을 초래한다. 처음부터 세밀한 계획과 설계안을 마련하여 실행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종이 한 장의 조그마한 차이가 사회 경제적으로 유용한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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