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안경테'에서 '뿔테'
'거북이 안경테'에서 '뿔테'
  • 제주일보
  • 승인 2018.03.1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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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노태우·김영삼 정권 시절 이야기 하나.

거북이의 등딱지로 만든 안경테가 권력 실세 사이에서 유행했다. 정권의 실세들과 정부고관, 실세 국회의원 사이에선 속칭 ‘거북이 안경테’를 쓰고 다니면 권력의 자리에 액운이 따르지 않고 승승장구하며 건강도 좋아진다는 얘기가 펴져나갔다.

거북이 안경테는 국산은 없고 일제(日製)뿐이었다. 도쿄의 한 안경점에서 팔았다. 권세가들은 해외여행을 하다가 일부러 도쿄에 들러 거북이 안경테를 샀다. 시류에 밝은 사람들은 이를 사다가 상관에게 바치기도 했다.

값도 일반적인 외제 안경테보다 몇 배나 비쌌다. 렌즈의 윗부분을 걸치는 테에만 거북이 등딱지를 붙인 것은 값이 싼 편이었다. 안경테 다리에까지 붙이거나 아예 안경테 전체를 등딱지로 만든 것은 상당한 고가였다. 거북이 안경테를 쓴 실세들끼리 마주치면 “얼마짜리냐”며 키들키들 웃기도 했다.

▲YS 정권이 들어서자 이들 실세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거북이 안경테’도 세월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꽃이 열흘 이상 피지 못한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력이 10년 이상 못 간다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이었다.

요즈음도 마찬가지. 과거 정권의 권세가들이 줄지어 감옥에 가는 것을 보면 실감나는 말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월만즉휴(月滿卽虧)’이고, 사람의 좋은 일은 10일을 넘지 못한다는 ‘인무십일호(人無十日好)’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무상한 것이 어찌 권력뿐이겠는가. 가는 세월도 무상하고 사랑도 명예도 무상하다. 돈도 사기꾼 한 번 잘못 만나면 만사 끝. 심지어 계절의 정취조차 무상하다. 무더운 여름 다음에 가을이 다가오는 이치를 보라. 천하의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다가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을 보면 계절이 얼마나 무상한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가 없다”고 했다. 만사가 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무상한 것이 권력의 특징일까.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다. 때로는 권력이 그 찬란한 위용을 자랑할 때도 있는 법이다. 권력은 줄 수 있는 것이 많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주위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권력은 또 높은 직위도 주고 부귀영화도 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필요한 곳에 압력도 행사할 수 있고 그동안 자신을 무시하고 제대로 대접을 해주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 통쾌하게 복수해줄 수도 있다.

이처럼 권력이 요술방망이와 같으니 과연 권력 앞에서, 또 권력을 가진 권력자 앞에서 초연할 수 있겠는가.

쓰레기통에서 살았던 그리스의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는 자신을 찾아온 알렉산더대왕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을 만큼 무관심했다. 알렉산더가 초조해하자 디오게네스는 청이 있다고 하면서 “햇볕을 가리지 말아달라”고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일화가 2000년 이상 내려온 것도 디오게네스처럼 권력을 무덤덤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천연기념물처럼 희소하고 드물기 때문이리라.

▲확실히 권력은 부러운 특권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국 사회는 권력을 가졌던 이들이 정권만 바뀌면 줄줄이 구속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도 모레 14일 검찰 포토라인에 선다. 또 한 번 ‘권력무상(權力無常)’이 생각날 것이다.

최근 법정에 출석하는 전 정권의 실세들이 안경을 끼는 일이 많다. 요즘 안경은 시력 교정용에서 이미지 변신용으로 달라졌다. 트럭 운전사를 대학 교수로, 거리의 거지를 예술가로 보이게 만들 정도니까.

요즘 유행은 거북이 등딱지로 만든 ‘거북이 안경테’는 아니다. 대개가 검정 뿔테 안경을 끼는 일이 많다고 한다. 지적이고 정직한 느낌을 주어 재판부의 마음을 사려는 노력이다. ‘법정 패션’에 ‘검은 뿔테 안경’이 추가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안경들이 무슨 소용있으랴. 세월의 강 앞에서는 다 부질 없는 짓이다.

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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