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남긴 교훈
폭설이 남긴 교훈
  • 김태형 기자
  • 승인 2016.01.2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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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흘간 제주 전역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며 초유의 항공대란 사태까지 초래했던 32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가 물러갔다. 이번 한파는 그동안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도 전역 영하권이라는 강추위와 폭설로 제주를 멈추게 만들었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이번 폭설과 한파 사태는 예전과 달리 제주에 적지 않은 상처와 고통을 남겼다.

무엇보다 항공기 운항이 사흘간 전면 중단돼 관광객 등 9만여 명의 발이 묶이며 제주국제공항을 ‘노숙 공항’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초유의 항공대란이 빚어졌다. 빙판 교통사고와 정전, 농작물 냉해는 물론 수도계량기 동파도 무려 1200건 이상 발생하는 등 크고 작은 피해가 잇따르면서 도민들이 생활에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그나마 인명 피해가 없다는 점에서 다행이지만 이번 사태는 남녘의 땅 제주에도 겨울철 자연재해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교훈과 함께 이에 대비해야 하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번 폭설 사태에 대한 제주도의 대응은 취약했다. ‘자연재난 표준행동 매뉴얼’에 따라 대설경보 발령에 따른 ‘비상 2단계(경계)’를 가동해 시설 응급복구와 교통 대책, 긴급 생활안전 및 물자 지원반 등이 운영돼야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또 제주공항에서는 수천명의 체류객들이 몰려 쪽잠을 자며 밤을 지내는 불편을 겪고 있는데도 유관기관 간 협력 미흡 등으로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이 제때 가동되지 못하는 허술한 대응능력을 보여줬다. 국민안전처를 만든 정부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종합해보면 이번 사태에 대한 미숙한 대처는 ‘안일함’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제주에서 많은 눈이 내리더라도 항공기 운항 장기 중단까지 빚어진 사태는 없었다. 여기에 며칠간 영하권 한파가 이어지는 이상기후도 거의 없었기에 사흘간 이어진 폭설 한파의 심각성을 간파하지 못했고 비상 사태에 대한 긴장감도 적었다.

이 같은 상황들은 2007년 9월 제주를 강타했던 태풍 ‘나리’를 새삼 되돌아 보게 만든다.

당시 나리 내습으로 산간 뿐만 아니라 해안 지역까지 2시간 내에 100㎜ 넘은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도심지 곳곳에서도 하천  범람에 따른 침수 피해 등으로 이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이로 인해 13명이 목숨을 잃어 역대 최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며 주택 및 각종 시설물 파손 등으로 1300억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입어 1959년 태풍 ‘사라’ 이후 최대 충격파를 안겨줬다.

대규모 하천 범람에 따른 물난리 걱정이 적었던 제주에 있어 태풍 ‘나리’는 되돌리고 싶은 깊은 상처를 남긴 재해였다. 이를 계기로 이상기후와 자연재해에 대한 경각심이 부각되면서 저류지 설치 등의 대책 마련으로 이어졌다.

이번 폭설 사태를 단지 일회성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상 기후 여파 등이 가속화되면서 여름철 태풍과 홍수는 물론 겨울철 폭설과 혹한 등의 자연재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 이변에 따른 돌발성 재난의 핵심 대응체계는 ‘사전 대비’를 통한 피해 예방이다. 무엇보다 정부와 제주도 차원에서 공항대란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재난 대응 시스템을 재정비, 지역 특성을 감안한 체계적인 개선방안을 제도화하는 게 급선무다.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재난 대응 시스템을 운영하는 행정 및 유관기관의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또 ‘천재(天災)’라는 재해도 언제든지 ‘인재(人災)’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폭설 사태는 더 큰 재앙을 막아내기 위한 자연의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관광 중심의 산업적 특성 등을 감안한 재난 대응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게 글로벌 제주를 목표로 하는 안전 제주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김태형 기자  sumbad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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