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정말로 미워한 것은
공자가 정말로 미워한 것은
  • 제주일보
  • 승인 2018.03.0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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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 철학과 교수·논설위원

[제주일보] 2000년 벽두는 난데없는 ‘홍위병(紅衛兵)’ 논쟁으로 장식됐다. 당시 낙선운동을 벌인 시민단체를 홍위병에 빗댄 중앙일간지의 시론이 촉발한 논쟁이었다.

“홍위병과 문화혁명을 떠올리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 될는지 모른다.”고 전제했지만, “출발할 때의 신선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집권여당이 그들을 활용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질 낮은 문화혁명”이 될 수 있다는 요지였다. 그러자 이 시론의 논리를 차용해 선의를 의심할 근거는 없지만 “그의 행각을 보면 자꾸 나치 친위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앞으로 그렇게 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하는 시론이 나왔다.

이 일은 ‘‘언어 폭력가’는 안 된다.’라는 양비론적 입장을 취한 시론과 반박이 연이어 같은 지면에 실리고, 최초 기고자의 반박과 그에 대한 재반박이 지면을 옮겨 실리는 정도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몇몇 시민단체와의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십년이 다되어 가는 이 해묵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든 이유는 ‘홍위병’이라는 말이 확산된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일로 지방선거를 앞둔 정가의 복잡한 속내를 들여다보고 경계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불꽃처럼 확산되는 미투운동에서도 확인되듯이 지난 이십년 동안 시민들의 의식이 충분히 성숙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꿎게 인용되어 곤욕을 치렀던 “공자가 미워한 것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기억을 불러 세우려고 한다.

최초 기고자가 인용한 ‘논어-양화’ 편의 내용은 이렇다. <공자는 “남의 잘못을 여럿 앞에서 흉보는 자를 미워하고(惡稱人之惡者) 아랫자리(혹은 못난 사람)에 있으면서 윗사람(혹은 잘난 사람)을 비방하는 자를 미워하며(惡居下流而上者) 용기만 있고 예의를 모르는 자를 미워하며(惡勇而無禮者) 과감하지만 앞뒤가 막힌 자를 미워한다(惡果敢易窒者).”고 했다.> 인용문에 대해서는 전공자로서 덧붙일 말이 없다. 아니, 필력이 살아 있는 문필가의 번역이라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요즘은 자기가 있는 자리가 어디건 정치를 떠들어대는 것이 잘나 보이는 세상이다. 옛날의 대부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직분과 이력을 가진 이라도 무리를 짓고 시세만 타면 정치가 제 것인양 나서고, 서민들은 입만 열면 정치를 비판한다. 그것도 지금 세상의 도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발전해서 그리된 것이라 하니 공자의 말은 저절로 죽은 셈이다.”라는 말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공자의 대답은 “군자들도 시시콜콜 싫어하는 것이 있을까요?”라는 물음에서 비롯됐다. 군자는 개인의 한계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꿰뚫어 통찰하는 지식인들이다. 그래서 특정한 사건, 시류에 휩쓸리는 것은 군자답지 못하다는 인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공의 물음은 사실 공자가 미워하는 것들을 인용해 시민단체를 ‘홍위병’으로 만든 이를 공격한 것이나 다름없다. 공자는 여기에 화답한다. 뒷짐 지고 한 걸음 떨어져 “아직 드러난 바는 없지만, 이렇게 될 수 있으니 냉정을 찾으라.”고 아는 척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공자가 미워하는 것들 앞에 빠진 주어는 “군자”다.

최근 제주대학교 총장은 대학에서 “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가 벌어진 데 대해 대학가족과 도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일탈행위로 보지 않고 구조적 불평등에서 찾아내는 책임 있는 자세에서 출발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대학이 피해자의 가족임을 강조하면서 ‘잘못에 대해 회초리를 드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줄 것’을 호소했다. 따라서 일부 언론에서 “총장 기자회견, ‘성추행’ 단어 왜 쏙 뺐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가족인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서였다.” 공자가 정말 미워한 것은 “이른바 지식인이라고 하는 자들이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고 변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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