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갈까?
소풍갈까?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3.0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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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 / 숙명여대.가천대 외래교수

[제주일보] 제주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분명 제주 출신이긴 한데 제주를 떠나 있던 30년 넘는 시간. 그 시간이 벌여놓은 제주와 나의 간격이 크게 느껴졌다.

제주와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데 딱히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왠지, 제주가 ‘갈 때는 지 맘대로 가놓곤, 이제 와서 급작스레 돌아와선 불현 듯 친하게 지내자고? 흥! 어디 내가 호락호락 마음을 주나 봐라’라고 삐친 듯 이야기 하는 듯 했다.

올레길 걷기, 오름 오르기, 제주 맛집 탐방,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정보는 넘쳐 나는데, 쉽게 어떤 시작을 하기가 어려웠다. 아예 모르는 듯 시작하자니 제법 아는 곳이 많고, 안다고 생각해서 가보자니 예전에 비해 길들이 꽤 복잡해져 엄두가 안나기도 하고…. 한참 생각을 만져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서귀포에서 오랜 시간 식당을 하고 있는 친척 오빠 내외가 생각이 났다. 무작정 가봤다. 아, 탁월한 선택이었다. 젊었을 때 이런 저런 꿈들을 가져보다 2대째 내려오는 가업을 이을 생각으로 최종 낙점을 찍으며 평생 제주에서 살아가는 오빠 내외의 얼굴에는 ‘그윽한 향기’가 배어있었다. “더 먹으라. 많이 먹으라”며 쉬지 않고 구워 주는 맛있는 고기를 실컷 먹었다. 서귀포에 와서 안 보고 가면 되레 오빠가 섭섭하다며 언제든 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명절 때 세뱃돈을 모아 삼일극장, 관광극장에 우르르 들어가 박장대소 하며 봤던 영화이야기. 장기자랑을 해보라는 어른들의 부름에 어색해서 쭈볏거리다가 결국 한껏 기량을 뽐내며 노래와 춤을 춰, 숨어있던 재능들이 속속 발견 될 때 서로를 향해 경탄의 눈길을 보내던 그 시간들의 이야기…. 오빠는 어린시절 친척들과 공유했던 그 추억의 시간들을 소환해 줬다.

인사를 하고 나서는 걸음에 언니가 식당 근처 내려가면 아는 길이 보일거라고 웃음 지으며 속삭인다.

아직 쌀쌀한 날씨, 옷깃을 여미며 언니가 손으로 휘둘러준 길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걷는데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외돌개, 삼매봉. 초등학교 시절, 6년 내내 소풍을 갔던 장소였다. 6학년생은 1학년 동생들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이 있다. 전학년이 긴 줄을 서서 함께 학교에서 삼매봉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소풍 때 무척 신기했던 것은 선생님과 함께 걸었는데 도착하자 얼마 안 있어 보물찾기를 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선생님들은 언제 보물을 숨기는 것인지? 그게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더 궁금한 것은 아무리 눈을 부비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찾지 못했던 보물쪽지들을 친구들은 금세 찾아내는 것이었다.

보물 찾기가 끝나고 나면 학년 별로, 반 별로 모여 장기자랑도 하고 이윽고 다가오는 소풍의 하이라이트 시간을 갖는다. 도시락 먹기다.

대부분 김밥을 싸오지만 몇학년 때인가 김밥 말고 다른 것을 싸달라고 엄마에게 부탁을 했던 적도 있었다.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다. 둥그렇게 모여 앉아, 식사를 시작할 때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친구들을 붙잡아 함께 식사를 했던 기억도 많다.

소풍의 추억이 잔뜩 묻어 있는 외돌개 주변을 초등학생 이후 수십년의 나이를 더 먹은 내가 발걸음 아끼며 걸어본다. ‘추억에는 어떤 힘이 있는 걸까’ 생각해 보며…. 웃고 울었던 그 추억의 기억 속에는 ‘함께’라는 순간이 늘 있었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 그 누군가가 모여 함께. 그래서 더 크게 웃고 어떨 땐 울음도 그로 인해 컸었으리라.

그리고 추억에는 또 한 가지 명절이나 소풍이라는 일상과 조금은 다른 특별한 의식의 이름을 갖는 순간들이 더 각별히 기억이 되는 듯 하다. 똑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명절·소풍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에 따른 의식을 치룰 때, 일상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흘러가던, 함께인 각 구성원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을 맞이하는 듯 하다.

이제 조금씩 제주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 하다. 아니 내가 제주에게 더 많은 말을 건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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