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의 우연한 만남 삶의 유희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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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일보
  • 승인 2018.03.0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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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추천하는 이달의 책] 도서관람

[제주일보] 오래 전에 쓰던 노트북을 꺼내보았다가 ‘도서관 투어’라는 제목의 문서파일을 발견한 적이 있다. 열어보았더니 몇 년 전 사서 공무원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면접시험 준비도 할 겸 몇 군데의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보고 느꼈던 걸 적어낸 기록들이 남아있었다.

이 도서관은 예술 분야 책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서 좋았고, 저 도서관은 자료실 안을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가는게 특이하더라. 이런 단편적인 기록이었지만 도서관마다 조금씩 다른 부분들을 관찰하면서 좋아하는 부분을 찾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사서가 되고난 이후에도 근무하는 곳이 아닌 다른 도서관 자료실을 구경하며 책을 읽는 걸 ‘이용자 놀이’라고 부르며 남몰래 즐기곤 했다.

그래서 이 책의 표지에 크게 박혀있는 ‘이 책은 서울의 도서관을 관람한 이야기이다. 서울시 내 도서관 10곳을 임의로 선정해 2016년 1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관람하였다. 학습이나 대출의 목적 없이 유희의 대상으로 도서관을 구경하는 동안 찾아낸 문장과 지나간 단상을 소개한다’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 도서관 구경을 ‘유희’로 생각하고 그걸 책으로 만들어 펴낼 생각을 하는 이용자가 존재한다는 게 신기하고 반가웠다.

또 어떤 시선으로 도서관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궁금해졌다.

‘도서관람’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공공도서관부터 대학도서관, 전문도서관까지 관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도서관의 모습을 둘러보는 ‘도서관-람’ 과 그 안에서 만난 책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는 ‘도서-관람’ 두 가지의 의미를 띄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으로 ‘도서-관람’에서 삼천포로 향해 치닫는 작가의 입담을 꼽고 싶은데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가서는 현대카드 모집인과의 안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고, 서가에서 ‘묵향’이라는 책을 발견했을 때는 무협지 매니아인 고등학교 동창생의 자기소개 에피소드를 얘기하는 식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처럼 공간이나 책을 통해 연상되는 개인적인 경험들을 마구마구 풀어놓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졸린 수업시간에 듣던 선생님의 첫사랑 얘기처럼 눈이 반짝 떠지게 흥미롭다.

이렇게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버리는 것도 도서관이라는 공간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과 인터넷 서점의 차이 중 하나가 책과의 ‘우연한 만남’을 주선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한다.

검색어를 입력해서 내가 원하는 책을 바로 찾는 인터넷 서점에 비해, 도서관에선 서가를 탐색하며 내가 알지 못했지만 원해왔던 많은 책들을 만나는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책 역시 단순히 도서관에 대한 이용 정보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만난 책과 문장, 이어지는 개인적인 일화들까지, 행간을 탐색하면서 예상치 못한 다양한 경험을 만나게 해준다.

책을 읽다보면 내가 일하고 놀러갔던 도서관과 그 안에서 만났던 책과 문장들과 사람들. 그에 연상되는 나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풀어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난다.

더 나아가 도서관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각자의 ‘도서관람’을 읽고 싶어진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매개로 각자의 삶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풀어낼 수 있기를, 또한 도서관에서 그런 책들을 만나는 우연한 경험들을 많이 주선할 수 있길 기대하며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강희진 제주도서관 사서>

제주일보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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