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분노하라, 1987
함께 분노하라, 1987
  • 김경호 기자
  • 승인 2018.03.0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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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톡] 故 박종철 고문치사 등 배경으로 전개국민의 힘으로 민주화 이끌어내 의미

1987년은 내가 고등학교 때였다. 그 시절 나는 본격적으로 입시미술학원에서 2절지 종이에 석고상을 그리며 미대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저녁 늦게 집에 가던 중 헬멧을 쓰고 외계인 복장을 한 여러 명이 뛰어가는 대학생을 붙잡고 봉고차에 실어 어디론지 급히 떠났는데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그날 9시 뉴스의 첫 장식은 경찰 최루탄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는 대학생들 모습이었다. 솔직히 세상물정 모르는 풋내기였던 나는 어느덧 31년 이라는 세월이 흘러 40대 가장이 되어 먹고사는 일과 아이들 학원비를 걱정하며 살고 있다. ‘386’세대 중 에서도 평범함의 극치이다. 최근에 이 영화를 마주하면서 다시 한 번 과거를 기억하게 되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고문치사로 사망한 故 박종철 군과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은 故 이한열 군의 사건을 배경으로 전개되고, 또한 독재정권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권력에 맞서, 국민 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 투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 ‘1987’ 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던 도중 한 대학생이 사망한다. 이 죽음을 덮으려는 사람들과 밝혀내려는 사람들의 대립 구도가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간다.

박 처장은 말단 부하 형사를 구속시키는 꼬리 자르기 수법을 사용한다.

조직을 위해 꼬리가 되는 것이 애국이고, 가족은 걱정 말라며 죄를 뒤집어 씌우고 결국 형사는 말한다. “받들겠습니다.”, “그래, 그거이 남영동이디.”

그런데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인줄 알았던 박 처장까지 구속된다. 누가 꼬리이고 누가 머리인지. 꼬리는 말 한다, 위에서 시켜서 했을 뿐이라고. 머리는 말 한다, 모든 게 애국이고 조국을 위해서 일한다고. 근데 머리는 왜 모를까? 자신도 꼬리가 될 수 있음을.

담당 교도관, 그의 조카 등 더 많은 이들이 진실을 알게 되어 함께 분노한다. 알다시피 1987년은 군사독재의 시기였다. 권력자의 힘은 그 무자비한 박 처장마저도 쉽게 치울 정도로 커졌다.

그러나 권력자는 국민의 힘에 의해 무너졌다. 이 영화에는 많은 배우가 등장한다. 대사 있는 배우만 125명이다. 그래서 제목이 ‘1987’ 이 될 수 있었다.

소수의 시대가 아닌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사람이 민주화를 위해 작은 힘을 보태 함께 싸웠다.

지난해 우리는 한 대통령의 추악한 진실을, 현재는 문화계 등 각계각층 권위자의 추잡한 진실과 마주하고 있다. 권력의 범죄와 은폐는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그때마다 우리는 분노해왔다. 함께 분노하는 것이야말로 1987년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이다.

영화에서 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는 ‘할 말이 없다’며 오열한다.

1987년에 빚을 진 우리도 그들에게 할 말이 없다. 다만 그들의 뜻을 후세까지 말해 줄 뿐이다. 더 이상의 은폐가 없도록, 우리는 함께 분노해야 한다.

김경호 기자  soulful@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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