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공항, 그리고 소통과 설득
제2공항, 그리고 소통과 설득
  • 제주일보
  • 승인 2016.01.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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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前 서울신문 편집부국장

우리나라 최초의 여론조사는 1430년, 그러니까 세종 12년에 실시됐다. 당시 세종은 토지의 질이나 농사의 풍작 여부에 관계없이 똑같은 세금을 내도록 하는 새로운 세법인 ‘공법(貢法)’ 실시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다. 그러면서 세종은 ‘물어보라 식이 아니라 들어보라’고 지시했다.

중앙관리는 물론 지방관아, 그리고 가난한 백성에게 이르기까지 가부를 잘 들어보라고 했던 것이다. 또한 응답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명확히 할 것을 주문했다. 호조(戶曹)가 5개월간 총 17만2000여 명이란 대규모 표본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는 찬성 9만8000여 명, 반대 7만4000여 명이었다.

이에 따라 세종은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이를 시행할 수 없지만, 좋다는 사람이 많으므로 법을 시행한다”고 공표했다. 오늘날의 과학적 표본추출에 의한 여론조사는 아니었겠지만, 백성들과 소통하고 그 뜻에 따라 정치를 하려고 했던 세종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통이란 말 그대로 뜻이 통해 서로 오해가 없는 것을 말한다. 얼핏 말은 쉽지만 ‘불통’이라고 할 정도로 소통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부부도 소통이 잘 되지 않아 헤어지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에서 생각과 마음이 잘 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소통이야 말로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탄탄한 힘이 된다. 그러기에 소통이 비록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는 소통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소통이 잘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진지한 설득에서 시작하고 꾸준히 노력하면서 이해의 폭과 깊이를 쌓아나가야 한다.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진정어린 노력을 다해야 한다. 소통이 잘 안되면 마음이 답답하고 서로가 섭섭한 마음을 갖게 마련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과 뜻이 비슷해지기 위해 진정성 있는 설득이 필요하고 서로 공유가 됐을 때 비로소 소통이 이루어진다.

소통의 달인이라고 하는 유명 MC가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던 내용이 새삼 생각난다.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들을수록 내 편이 많아진다’,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라’, ‘목소리 높일수록 뜻은 왜곡된다’, ‘앞에서 못하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마라’ 등이다. 그렇다. 말하기보다는 질문을 유도하고 설득을 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을 다해야 한다. 자기 생각만 늘어놨다가는 오히려 골만 더 깊어질 수 있다.

제주도가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에서 발생하는 주민과의 갈등 해소를 위해 무제한 소통에 나섰다고 한다. 지난 13일 서귀포시 성산읍사무소 2층에 공항확충지원본부 특별지원사무소 현판식과 함께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앞으로 특별사무소를 통해 지역주민과의 ‘신뢰소통’,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정보소통’, 기간에 제한 없는 ‘무한소통’을 한다는 것이다. 주요 역할은 ▲주민개인별 민원․소통면담서인 ‘소통록’ 작성 ▲전 가구를 대상으로 한 도정과 주민이 ‘동행’하는 ‘무제한 호별방문’ 실시 ▲주민 개별 맞춤형 ‘전문상담’ 지원 등이라고 했다. 그런데 뭔가 씁쓸해진다. ‘무제한 소통’ ‘무제한 호별방문’ 등이 그렇다.

물론 소통을 위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고 하지만 듣기에 따라 무조건 소통을 하고야 말겠다는 자세는 다소 억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제2공항 건설 예정지 주민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감일 것이다. 그런 주민들에게 ‘무제한’이 잘 통할지 궁금해진다. 생각을 한번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세종대왕이 중요시했던 ‘들어라’하는 소통의 기술, 백성을 향한 사랑의 자세로 말이다.

미국의 작가 린드버그는 “공포감의 반대말은 사랑이다. 가슴이 사랑으로 가득할 때 그곳엔 공포도, 의혹도, 주저함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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