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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대·무장대·민간인 희생 유족 어우러져 살아”인터뷰 / 양봉천 前 현의합장묘 4·3유족회장
현봉철 기자 | 승인 2018.02.25

[제주일보=현봉철기자] “우리 식구들을 비롯해 마을사람 모두가 참혹한 세월의 희생자였지요.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기보다는 화해와 상생이라는 측면에서 더불어 살아야지요.”

양봉천 전 현의합장묘 4·3유족회장(71)은 4·3의 광풍 속에서 아버지를 비롯한 일가친척 10여 명을 잃었다.

양 전 회장은 “의귀리 주민은 물론 인근 수망·한남리 주민들도 끌려와 의귀초등학교에 수용됐다가 끌려가 학살당했다”며 “4·3 당시 너무 어려 기억도 나지 않지만 자라면서 부친을 비롯한 친척들을 앗아간 4·3은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양 전 회장은 “의귀초등학교 교사였던 큰 형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경찰에 끌려가 행방불명됐다가 2007년 제주국제공항에서 이뤄진 제주4·3희생자 유해발굴 현장에서 발견했다”며 “발굴 현장에서 큰 형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도장을 발견하고, DNA 감식을 거쳐 형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양 전 회장은 “유해 발굴현장에서 형의 도장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정뜨르비행장(옛 제주공항) 학살사건에 형의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억울한 죽음의 과정이 밝혀져야 한다”고 흐느꼈다.

양 전 회장은 “의귀리에는 민간인 희생자 묘역인 현의합장묘와 무장대 희생자 무덤인 송령이골이 같이 존재하고 있다”며 “송령이골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것을 보면 다 같은 시대의 희생자라는 관점에서 매우 안타깝고 미안한 일”이라고 말했다.

제주 남원 의귀마을 4·3길 해설사로 현의합장묘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는 양 전 회장은 4·3과 관련한 마을의 기록들을 다시한번 살펴보고 있다. 그의 기록에는 마을사람들의 이름이 지워져 있다.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 그대로를 알리기 위해 역사적 사실은 기록하되 서로 원망하고 탓할 수 있는 시빗거리를 없애려는 나름의 대책이다.

그는 “중산간 마을인 의귀리에는 토벌대와 무장대, 민간인 등 4·3 당시 희생당한 모두의 후손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며 “과거 서로의 아픔과 갈등을 들추고 탓하기보다는 앞으로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해 화해와 상생이라는 4·3의 정신으로 함께 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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