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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했던 중산간 마을 덮친 4·3 광풍, 제주사회 비극 '축소판'4·3길을 걷다 3-삶과 죽음의 경계 의귀리
현봉철 기자 | 승인 2018.02.25
2003년 9월 세 구덩이에 흩어져 있던 유해를 발굴해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 새로운 묘역을 마련해 안장했다. 의로운 영혼들이 함꼐 묻혀 있는 묘 ‘현의합장묘’다.

아! 여기에 의로운 영혼들이 고이 잠드시도다. 36년 간에 걸친 일제통치의 질곡에서 해방된 조국산천, 그러나 사상대립과 좌우충돌로 빚어지는 갖가지 비극들. 1948년 4월 3일 4 ·3사건은 본도 전역을 휩쓸었고, 이 처참한 와중에서도 일편단심 조상전래의 고장을 지키다 산화하신 아, 갸륵하신 그대 이름들이여!
-현의합장묘 비문 中
 
일제에서 벗어나 해방공간의 혼돈 속에서 이념 대립으로 인한 갈등이 제주를 휩쓸 때 제주4·3은 발생했다. 하지만 제주의 수많은 희생이 단순한 이념 갈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나 많고 참혹한 희생이었다.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는 조선시대 중엽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1300여 필 이상의 말을 조정에 바친 헌마공신 김만일의 고향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6년까지 서중면사무소가 소재할 정도로 마을의 역사가 깊고, 남원면 일대의 문화·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4·3 발발 초기만 해도 평온했던 의귀리는 1948년 11월 이후 중산간 마을에 불어닥친 군경토벌대의 강경진압작전으로 한순간에 삶터를 잃어버렸다.

인근 오름과 숲, 궤(작은 바위동굴) 등에 숨어 살거나 산으로 피신했던 의귀리 마을주민들은 토벌대에 쫓겨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의귀리·수망리·한남리·신흥리 등 4개 마을의 어린이들이 다녔던 의귀초등학교가 4·3이 한창이던 1948년 12월 15일 폐교되고, 12월 26일 군인이 주둔하게 됐다.

운명의 날인 1949년 1월 10일과 12일. 의귀초등학교 인근 동녘밭에서 주민 80여 명의 집단학살당했다. 당시 시신수습도 허용되지 않아 대부분의 시신들은 흙만 대충 덮인 채로 방치되다가 현의합장묘 옛터로 옮겨져 3개의 구덩이에 매장됐다.

사상과 이념 등과 전혀 무관했던 순박한 중산간의 마을사람들의 시신이 ‘멜젓 담듯’ 구덩이에 던져진 것이다.

유족들은 1976년 ‘세 무덤에 묻힌 사람의 후손들은 같은 친척’이라는 뜻의 삼묘동친회를 조직해 봉분을 단장하고 벌초와 제례를 봉행하다가 2003년 9월 세 구덩이에 흩어져 있던 유해를 발굴해 남원읍 수망리에 새로운 묘역을 마련해 안장했다.

의로운 영혼들이 함께 묻혀 있는 묘라는 ‘현의합장묘(顯義合葬墓)’가 바로 그것이다.
유족회의 명칭도 현의합장묘 4·3유족회로 변경돼 2003년 이후 해마다 음력 8월 24일에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나날을 보내던 의귀리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는 이후 한림화의 ‘한라산의 노을(1991)’ 등 여러 문학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현의합장묘가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을 모신 묘역이라면 송령이골은 도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무장대 시신이 모여 있는 무덤이다. 1949년 1월 12일 새벽 무장대는 의귀초등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를 공격했으나 2시간여의 전투에서 51명의 사망자를 내고 퇴각했다.

이들은 학교에 수용된 양민들이 학살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토벌대를 공격했으나 대패했다. 이날 토벌대를 습격했다가 사살된 무장대 시신은 몇 개월 동안 학교 뒤편에 버려졌다가 마을 서쪽의 ‘송령이골’로 옮겨졌다.

일부 시신은 가족이 찾아갔으나 대다수의 시신은 구덩이에 매장된 채 방치됐다.

2004년 5월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탁발순례단 등이 벌초를 하고 안내판을 세웠다.
4·3의 광풍 속에서 학살된 민간인뿐만 아니라 군인과 경찰, 무장대 등 모두가 이념대립의 희생자라는 측면에서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 남아있는 4·3의 흔적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4·3으로 인한 의귀마을 희생자는 250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대다수는 지금까지 생사를 알 수 없는 4·3 행방불명인으로 남아있다. 2016년 9월 개통된 ‘제주 남원 의귀마을 4·3길’은 ‘신산모루 가는 길’과 ‘민오름주둔소 가는 길’ 2개 코스로 나눠져 있다.

제주의 중산간 마을인 의귀리에서 빚어진 비극은 당시 제주사회가 겪었던 비극의 축소판이다.

 

찾아가는 길=제주시 도심에서 사라봉오거리를 지난 표선·성산 방면으로 직진하다가 남조로 교차로에서 우회전해서 직진하면 의귀리가 나온다. 서귀포시 남원읍 한신로 207.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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