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겠다, 겠다, 겠다"
"~겠다, 겠다, 겠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2.25 1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일보] 어떤 정치인이 선거 유세에서 엄지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고 모여있는 군중에게 환호를 받으며 단상에 올랐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 입니다.” 이 정치인은 모여있는 군중을 바라보다 눈병이 나서 안대로 한 쪽 눈을 가린 한 시민을 가리키며 엄지 손가락을 힘차게 척 치켜들었다.

그러자 이 안대를 한 시민이 정치인을 향해 두 손가락을 펼쳤다.

그 순간 단상의 마이크를 쥔 이 정치인은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V자 두 손가락으로 이번 선거에 나의 승리를 확인했다”며 기뻐했다.

이렇게 정치인이 외치기 시작하자 두 손가락을 펴들었던 안대를 한 시민이 이번에는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었다.

정치인도 따라 주먹을 흔들면서 곁에 있던 유세 취재기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저 시민들의 주먹을 보았습니까? 국민은 우리 편입니다.” 그리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우리 단결합시다!”

▲취재기자들이 뭔가 이상해서 그 안대를 한 시민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웬걸 그는 화가 잔뜩 나있었다. 그가 하는 말인 즉, 저 정치인이 나를 향해 “너는 눈이 하나 뿐이구나”라며 손가락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래~ 너는 눈이 둘이냐”고 손가락 둘을 들었더니 저 사람이 뭐 V자가 어떻고 하더라는 것이다. 화가 나서 “그냥 한 주먹 맞고 싶으냐”고 주먹을 흔들었단다.

지금은 5060이 된 선거 취재 기자 사이에서 회자되던 우스갯소리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정치인의 의사 표시와 유권자인 시민의 이해 사이의 괴리를 빚댄 농담이다.

사실 정치인의 말을 곧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의 말이 시장판 약장수 목청보다 가볍다고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퇴임사에서 국민들에게 스스로 고백을 했다. 재임 중 경제성장률 7% 공약을 못 지켜 미안하다면서 (선거 때) 이회창 후보가 실천 불가능한 6%를 내세우기에 화가 나서 (나는) 1%포인트를 올려 7%로 질러버렸다는 것이다.

▲민선 7기 선량(善良)들을 뽑는 6·13 지방선거가 100여 일 전이다. 벌써부터 되는 말 안 되는 말 다 쏟아지고 있다. 말만이 아니라 손짓 발짓이 난무하면서 그 뜻을 놓고도 “눈이 하나냐 둘이냐” 해석이 제각각이다.

사실 그동안 민선 1기부터 지금까지 선량 후보(당선, 낙선 포함)들이 쏟아놓은 핑크빛 공약들을 되돌아보면 한 마디로 코미디 쇼를 보는 듯하다. 그 말 중 10%만이라도 달성됐으면 제주도는 벌써 홍콩이나 마카오같은 국제자유도시가 됐을 것이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복지사회가 건설됐을 것이다. 모두가 무엇을 ‘유치하겠다’, ‘조성하겠다’, ‘개발하겠다’, ‘만들겠다’, ‘열겠다’, ‘바꾸겠다’는 이른바 ‘~겠다, 겠다, 겠다’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방법, 예산 마련 등 공약 실천을 위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후보자마다 제주지역 현실에 맞는 참신성과 전문성, 차별성 등은 빠진 채 허울뿐인 말잔치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나마 퇴임사에서 국민들에게 이실직고하면서 사과를 했지만 그동안 당선된 선량들이 퇴임하면서 공약 미이행에 대해 사과했다는 말 들어본 적이 없다.

▲말이 빈말이 되다 보니 선거가 팬터마임(pantomime)이나 묵극(默劇)이 되는 듯하다. 대사 없이 몸짓의 표현만으로 진행하는 무언극 배우들은 천마디 말보다 더 깊이있게 그 감정과 사상을 전달한다. 그런데 지금 선거판의 등장 인물들은 수준 이하다. 저마다 “도민은 자기 편”이라고 주먹을 불끈 쥐는데 정작 도민들에게 물어보면 “당신 한 주먹 맞고 싶으냐”고 한다.

요즘 하루종일 악수를 하고 다녀서 손바닥이 닳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침마다 손바닥 마사지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도민들의 뜻을 제대로 알아들을 일이다. 마지못해 웃으며 악수를 해준다고 지지 의사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코미디같은 ‘립서비스’는 이제 그만. 선거 운동도 도민의 키높이에 맞추었으면 좋겠다. 후보들의 선거 운동 수준이 도민의 수준보다 한참 뒤떨어지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