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며
새해를 맞이하며
  • 제주일보
  • 승인 2018.02.2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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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호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

[제주일보] 신정과 구정이 있어 번거로움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다.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었는데도 늦게 적응하는 몸과 마음 때문이다. 구정이 되어서야 겨우 “아, 새해가 왔구나!”라는 깨달음이 오고 갈등하던 올해의 할 일 등이 어렴풋이 떠오르며 감을 잡게 된다. 그제야 새해인사가 몸속으로 들어온다.

“2018년 황금 개띠를 맞아 모두가 건강하고 웃으며 행복하게, 복 마니 받으십시오.”

세상사, 크게 우주적으로 보면 고민할 일, 울 일, 화날 일이 없다. 오히려 감사할 일로 가득하다.

무(無)의 우주에서 대략 137억년 전쯤 빅뱅(Big Bang)이 일어났다. 이 대폭발로 우주는 수소와 헬륨으로 가득 찼고 항성과 행성들의 끊임없는 충돌로 변화하며 계속 팽창중이다. 달과 마지막으로 충돌하고 생긴 지구엔 약 35억 년 전에야 최초 원시생명(세포)이 탄생했다.

소행성의 충돌로 생긴 여러 빙하기 끝에 인류가 살 만한 최적의 조건이 된 지는 마지막 소(小)빙하기가 끝난 1만2900년 전부터이다. 24종의 인류종(人類種) 중에서 3~4만 년 전까지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하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가 현생인류의 조상이다.

지구의 미생물로 시작해서 지금, 우리가 되기까지 약 35억년이 걸렸다. 기적 같은 지구의 탄생까지 감안하면 현재의 인류, 약 76억명은 몇 억겁의 1 확률로 행운아들이다.

지구상의 모든 복권을 다 맞을 가능성보다 더 적은 확률의 행운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법정 스님이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위대한 종교는, 유구한 세월동안 현재의 나로 DNA를 완성시켜 준 조상이다.

현재 내 모습이 탐탁하지 않을지라도 나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다. 이 또한 수억 겁의 1 확률로 생명의 조탁을 거쳐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식물은 살아남는 방법을 각자의 생존 DNA에 새겨 후손에게 넘긴다. 그럼에도 현생인류만큼 행운을 누리는 동식물은 없다. 지구만이 아니라 우주에서 수십억 광년 떨어진 행성까지 다 뒤져도 생물이라고 할만한 게 발견된 적도 없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현재 발견된 은하계는 천억 개가 넘는다.

우리는 못 느끼지만 지구가 속한 태양계,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계는 통째로 초속 1300㎞/s 속도로 안드로메다 은하계(안드로메다 성운)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안드로메다 성운 역시 우리 은하계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두 은하계가 만나는 예상시점은 약 4억년 후로 추정된다.

그 4억년 후엔 충돌하여 종말을 고할지 융합할지 재탄생 할지는 모르지만 걱정해야 할 인류 멸망 시나리오로는 아직 아니다. 인류의 행운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인류의 생로병사는 그야말로 찰나라 슬퍼할 새도 없다. 잠깐씩들 지나가는 인생인데 누가 누구를 슬퍼하겠는가? 그럼에도 우주의 일부인 인간은 철저히 현시적(現時的)이다.

부처님이 살아 돌아와 다시 깨달아도 인간의 육신을 벗지 않는 이상은 어쩔 수 없다. 때가 되면 먹어야 하고 자야 하고 배설해야 한다.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배고픔, 피곤함, 외로움, 아픔 등)이 번뇌(煩惱)일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세상사, 작게 보면 온통 전쟁터이다. 울고 웃고 분노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아프다 죽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존재론적으론 깃털같이 가벼울 수밖에 없는 인류가 그렇게 살면서도 지금의 문명까지 이루었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죽더라도 후세는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열망으로 가득한 존재가 우리, 인류이기 때문이다. 올 해는 서로 감사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으면 한다.

제주일보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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