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확장에 사라진 ‘몰래물’, 주민들 쉼터 만들어 ‘추억’
공항 확장에 사라진 ‘몰래물’, 주민들 쉼터 만들어 ‘추억’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2.1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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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제17코스(광령~제주원도심올레)-장안사~공항올레(6.8㎞)
몰래물 왕돌할망당

[제주일보] # 구질막터와 왕돌할망당

장안사부터는 올레길이 해안으로 가지 않고 맞은편 펄리플러스 호텔 앞으로 이어진다.

안으로 들어가면 원래 밭이었던 곳에 식품가공공장과 펜션 등이 들어섰다. 그 길은 얼마 없어 제주하수처리장과 만나고, 다시 해안도로로 내려가면 곧 신사수동 포구다.

포구에 ‘홀캐물 노천탕’이라 해 사방을 두르고 지붕을 덮어 ‘여탕 1000원’이라 써 붙였다.

조금 더 가면 제3사수교이고 옆에 ‘기건(奇虔)의 구질막(救疾幕)터’란 표지석이 나타난다. 도로 확장에 따라 몇 군데로 옮겨지다 이곳에 정착했는데, ‘기건 목사가 구질막을 세우고 나환자를 치료했던 터’라 새겼다.

1445년 이곳을 순시하던 기 목사는 민가에서 쫓겨나 바위틈에서 신음하고 있던 나환자들을 발견하고, 이곳에 막을 설치해 고삼원(苦蔘元)을 비롯한 약품, 양식, 의류 등을 지급하고 의생과 스님을 배치해 치료하도록 했다.

그 뒤로부터 이 일대를 ‘병막이마루’라 했으며, 바닷가 샘을 ‘용막이샘’이라고 부르게 됐다.

그러고 보면 기건 목사가 왜 선정을 베푼 목사로 도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알만하다.

다리를 지나 바닷가 쪽에 표석이 보여 들여다보니 ‘왕돌할망당’에 대한 내용이다.

‘왕돌’은 화산이 폭발할 때 화구에서 내려온 용암이 굳어져서 이뤄진 기암으로 둘레 56m에 높이 5.5m나 된다. 넓고 푸른 바다를 향해 우뚝 솟은 모습이 용상과 같아 왕돌로 부르며, 한 해의 풍어와 만사태평, 주민의 평안을 기리는 용왕제를 지내는 곳이란다.

옆에 몰래물 본향당이 있었는데, 풍어를 가져다주는 선왕신을 모시는 당이었다.

지금은 잘 돌보지 않아 절벽 아래로 늘어진 순비기나무에 빛바랜 명실 타래와 물색이 초라하게 매달려 있다.

 

몰래물 해안.

# 몰래물과 방사탑

그곳을 조금 지나면 여러 가지 형태의 비석들이 서 있다. 자세히 보면 ‘애향탑’과 ‘몰래물 향우회 창립 기념탑’, ‘몰래물 사적비’와 정지용의 ‘고향’ 시비 등이 서 있는 ‘몰래물 쉼터’다.

공항 확장으로 인해 여러 곳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고향을 잊지 말자고 조성한 소공원이랄까.

‘우리 몰래물은 신성마을, 제성마을, 명주마을, 동성마을 등으로 비록 헤어져 살고 있지만, 꿈에도 못 잊어 마음 깊이 품고 다닌 자랑스런 고향의 꿈동산에 조상의 숭고한 근검․성실․조냥의 정신을 이어받아 화목과 협력을 바탕으로 하나가 되기를 다짐하면서 걷고 노닐던 애환의 서려 있는 물동산에 각처에 거주하고 있는 몰래물 사람들의 애향정신을 모아 쉼터를 가꾸어 만든다’는 눈물겨운 사연이다. 글자까지 닳아버린 ‘사수천 수리 기념비’ 옆으로 들어가 보니 남탕과 여탕에 정적만이 감돈다.

길 남쪽 눈 쌓인 방사탑에 다가서서 안내판을 들여다본다. 몰래물 마을에는 2기의 방사탑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바다가 있는 북쪽이 허(虛)하다고 해서 액운이 이쪽으로 들어온다고 믿어 탑을 쌓았다. 이 탑으로 하여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란다.

 

꽃봉우리를 터뜨린 매화.

# 봄을 재촉하는 매화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버린 후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자리에 크고 번듯한 집을 짓고 들어와 장사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목격한다. 얼마 안가 어영소공원에 이르렀는데, 이곳이 ‘공항올레’ 끝점으로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공항울타리를 따라 공항까지 4.2㎞의 코스다. 그곳에서 역 방향으로 걸으며 눈앞에서 뜨고 앉는 비행기를 바라본다.

주변 땅은 온통 렌터카 회사와 주차장이다. 해수와 햇볕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자동차 무더기는 용담2동 성화마을까지 이어진다.

평년과 달리 많은 눈이 내렸던 겨울 날씨가 풀리며 서서히 봄이 오고 있다. 성화마을 출입국관리사무소 맞은편에는 20년쯤 되어 보이는 매실나무 20여 그루에 매화가 피어나 나무가 온통 새하얗다.

 

# 먹돌새기 삼거리를 지나며

먹돌새기는 비행장 동남쪽 일대인데, 해방 후 몇 가호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했고, 4·3 이후 연동, 노형, 해안동 등지에서 내려온 소개민들이 근처 밭을 임대해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지역 이름 ‘먹돌새기’는 주변에 검은 돌멩이가 많아 붙은 이름으로 보고 있다.

이곳은 주호시대 이전 유물들이 많이 출토된 용담동 유물산포지의 하나로 월성마을에 가면 옹관과 석곽묘 출토지가 있다. 얼마 전 월성사거리 옆 세모꼴 공터에 2세기경의 주거지 모형들을 세웠으나,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 철거하고 지금은 조그만 공원을 조성해 쉼터 정자를 세우고 여러 종류의 꽃과 나무를 심어놓았다.

 

제주국제공항 지석묘

# 제주국제공항과 지석묘

워싱토니아 야자수와 유리호프스, 소철, 남천, 장미, 유카, 붉가시나무, 능소화 등이 심어져 있는 긴 가로수길을 걸어, 제주국제공항에 이른다. 입구에는 포구에나 있음직한 도댓불을 만들어 세웠고,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1번 게이트 닿기 전 기둥에 붙인 공항올레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제주공항에 내린 손님들에게 남국적인 인상을 주는 커다란 워싱토니아 야자가 심어진 주차장 남쪽에는 공항을 조성하면서 옮겨 놓은 지석묘 2기가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된 지석묘에 포함된 것들이다.

제주의 지석묘들은 본토보다 늦은 시기인 기원 전후에서 기원후 600년 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속에 묻혔던 부장품을 같이 옮겼는지 여부가 궁금하다.

집으로 오기 위해 버스승강장으로 가면서 생각해본다. 요즘 공항 확장과 제2공항 건설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혹 오늘 걸은 공항올레 주변에 가득했던 렌터카에서 그 해답의 열쇠를 찾을 수는 없을까? 방향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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