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나?"
"보고 있나?"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2.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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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시인 / 전 중등교장 /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보고 있나?”

테니스선수 정현의 서명(signature)이다. 2018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 그는 준결승에 오르는 순간(2018년 1월 24일), 승자로서 경기결과 확인서명으로 ‘보고 있나?’라고 썼다. 그의 성취는 전 세계 모든 테니스인들을 잠시 정신이 텅 빈 상태에 빠지게 했다. 그랜드슬램(윔블던 테니스, 프랑스 오픈, US 오픈, 호주 오픈) 어느 곳에서도 없었던 한국인으로서 이루어낸 초유의 기록이다. 이형택 선수도 US오픈에서 16강까지였는데, 정현은 4강에 오른 것이다.

돼지오줌통 공으로 골목축구 하듯이 필자는 40년 이상을 동호인테니스로 살아오고 있다. 이제 고희(古稀)에 닿았다. 정현 선수의 나이에 둘을 곱하면 나의 테니스경력과 얼추 맞다. 이젠 공이 눈에 보이나 발이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공에 대한 얘기는 입으로 더 잘 할 수 있다. 호주오픈(2018)에서 나의 생각의 여운을 더 길게 끄는 것은 정현의 경기만큼이나 그의 서명, ‘보고 있나?’에 있다.

호주오픈 대회 내내 중계카메라는 어느 여인을 비추고 있었다. 누구든 정현의 어머니인 것을 직감하게 된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한 어느 복싱선수처럼, 엄마에게 하고픈 응석표현일까? 아니면, 여자친구에게 자랑하고파 ‘보고 있나?’ 한 것일까? 누구에게 한 표현이든지, MB(전 대통령)도 응신문자를 써 보냈다. ‘보고 있다’라고. 그러나 MB에게도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일들이 없었을까.

“뉴스가 먼저일까, 사건이 먼저일까?” 교실수업 중 학생들에게 물어봤었다. 모두가 사건이 먼저라고 대답을 한다.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그 사건을 알리는 것이 뉴스가 아닌가라고, 당연이 사건이 먼저라고들 한다. 그런데, 뉴스가 앞서서 온 세상으로 퍼뜨려 알리지 않는다면 세상모르게 파묻혀 덮일지도 모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모르고 지날 것이라고 믿고 몰래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보고 있다’를 일깨우려고 ‘보고 있나?’ 한 것은 아닐까. 사유(思惟)가 여운을 물고 이어져간다.

사람의 마음은 두 가지 갈래가 있다고 한다.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다. ‘사람도 동물이다’에서, 동물적 존재의 마음에 끌리게 되면 그것은 인심이다(書經 大禹謀). 바르고 착한 길을 따르려는 마음이 도심이라 한다(佛書). 무엇이 바르고 착한 길(道)일까. 가슴(心)에 끌려 발을 옮겨가기만 하면, 동물적으로 가고 있음을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이라도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쉬엄쉬엄(辶) 발을 멈추어 머리(首)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도(道) 아닐까. 무엇이 착한(善) 것일까? 노쇠(老衰)한 부모님의 입(口)에 잘 구운 양고기(羊)를 꼬치에 꿰어(一) 드시도록 함이 선(善)일 것이다.

도심(道心)이 깨어나려면 두려움이 있어야한다(금장태 교수). 두려움이란 경외(敬畏)이다. 하늘이 보고 있다는 생각이다. 죄(罪)란 네(四)가지의 아님(非)이다. 하늘이 내려보기에 그릇된 것, 내가 딛고 있는 땅이 아니라 하는 것, 지나는 바람결이 내 머리카락을 흔들어주며 아니라 하는 것, 그리고 나의 마음이 아니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선친비(先親妣)께서는 여덟 남매를 낳아 키우셨다. 자축(自祝)할 일이 있을 때마다 하는 시작건배사이다. “조상님께서….” 맏이의 선창(先唱)에, “보고 계시다” 제창(齊唱)한다. 무술(戊戌) 설날아침, 진설(陳設)·분향(焚香)·배례(拜禮)하며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조상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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