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물꼬가 트인 '남과 북' 대화의 물길
다시 물꼬가 트인 '남과 북' 대화의 물길
  • 제주일보
  • 승인 2018.02.1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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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철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화평론가·논설위원

[제주일보] 2018년 2월 9일.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았다.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은 한반도기를 함께 붙들고 펄럭이면서 동시에 입장하였다. 남북 단일팀 선수단은 환하게 웃으면서 지구촌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즐겁게, 그리고 당당하게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푸른색 한반도기가 이제는 낯설지 않을 만큼 스포츠 분야에서 남북 단일팀을 상징하는 아주 친근한 표상으로 자리잡았음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전세계의 미디어들은 이 가슴 벅찬 흥분의 순간을 실시간으로 지구촌 시민들에게 타전하였다. 그들은 경이적인 눈으로 보고 감탄했으며 놀랐다. 정치적 대립과 갈등의 온상, 그래서 동아시아의 화약고로만 한반도를 인식하는 세계의 미디어들은 남북단일팀이 구성되는 과정과 마침내 구성된 남북 단일팀이 세계인들 앞에 동시에 입장하는 경이적 장면을 또렷이 지켜본 것이다.

이번 개막식을 지켜보면서 문학 분야의 남북 교류의 실무를 경험한 적 있는 나로서는 여러 일들이 겹쳐졌다. ‘참여정부’ 시절 남과 북의 문인들은 해외 작가들과 함께 분단 60년 만에 처음으로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2005년 7월 20~25일)를 북한의 평양, 묘향산, 백두산 등지에서 가졌다.

그리고 그 이듬해 금강산에서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함으로써 문학 분야에서는 비록 조직의 형식에 국한된 한계가 있지만 분단의 경계를 허무는 가시적 성과를 도출했다.

물론 난생 처음으로 경험한 남북 교류의 실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실제 정치와 직접적으로 무관한 문학 분야라고 할지라도 분단의 갈등과 상처로 켜켜이 누적된 남과 북의 생활 감정과 인식,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총체적 표현인 언어의 차이는 피상적으로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하지만 오랜 냉전체제 아래 서로에게 스며든 그 서먹거림과 조심스러움은 자주 만나면서 서서히 눈 녹듯이 해소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서로 핏대를 세우고 목소리를 높이며 얼굴을 붉히는 논쟁도 여러 번 하였다. 나는 지금도 북측 파트너가 우리 측에게 내뱉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섬뜩한 말을 기억한다. 양측이 서로의 현실적 입장을 어렵게 하지 않기 위해 서로 애를 쓰면서 대화가 순조롭게 잘 진행되는가 싶더니 어떤 지점에서는 서로 물러설 수 없어 심한 논쟁을 벌인 후 휴지기를 가진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면서 인내를 갖고 각자의 주장과 입장을 조금씩 서로 이해하면서 대화의 자리를 다시 가졌다. 그리하여 힘든 과정 속에서 ‘6‧15민족문학인협회’가 결성되고, 그 강령을 마련하였으며 기관지인 ‘통일문학’을 창간하여 제2호까지 발간하였다.

협회 결성, 강령 마련, 기관지 창간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분단의 세월 속에서 각기 서로 다른 정치체제 아래 펼쳐진 남과 북의 문학은 대화 과정에서도 수차례 확인됐듯이 문학에 대한 통념을 비롯하여 그 가치와 역할에 대해 차이를 확연히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공유한, 즉 겨레말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쉽게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남과 북의 문학 교류를 하면서 서로 곤혹스레 맞닥뜨린 갈등에서 심한 논쟁이 가능한 것은 외국어가 아닌 우리 민족의 겨레말을 통해서였고, 이 논쟁 속에서 서로의 입장을 조율시킬 수 있지 않았는가.

그렇다. 우리는 이것을 넓고 깊게 이해해야 한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단일팀이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기까지,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만들어지기까지, 북한의 예술단원이 강릉과 서울에서 공연을 하기까지, 그리고 북측의 고위급 대표단이 청와대를 방문하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남과 북 서로의 입장과 차이를 최대한 이해하면서 조율한 노력의 값진 선물이다. 이것들을 두고 케케묵은 냉전시대의 유산으로 옹졸하게 인식해서는 곤란하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어렵게 물꼬를 튼 남북 대화의 물길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낼지 남과 북의 지혜와 용기를 기대해본다.

 

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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