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 나누는 행복한 설 명절 되세요
情 나누는 행복한 설 명절 되세요
  • 신정익 기자
  • 승인 2018.02.15 11: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일보=신정익기자]

섣달 그믐
어머니의 한숨처럼 눈발은 그치지 않고
대목장이 섰다는 면소재지로 어머니는
돈 몇 푼 쥐어 들고 집을 나서셨다

사고 싶은 것이야
많았겠지요, 가슴 아팠겠지요 (중략)

큰형이 내려오면 맛보이신다고
땅 속에 묻어 뒀던 감을 내어 오시고
밤도 내어 오신다. 배도 내어 오신다
형님의 방에는 뜨근뜨근 불이 지펴지고
이불 호청도 빨아서
곱게 풀을 멕이셨다

이번 설에는 내려 오것제
토방 앞 처마끝에 불을 걸어 밝히시고
오는 잠 쫓으시며 떡대를 곱게 써신다

늬 형은 떡국을 참 잘 먹었어야
지나는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에 가는 귀 세우시며
게 누구여, 아범이냐
못난 것 같으니라고
에미가 언제 돈보따리 싸들고 오길 바랬었나
일년에 몇 번 있는 것도 아니고
설날에 다들 모여
떡국이나 한 그릇 하자고 했더니

새끼들허고 떡국이나 해먹고 있는지
밥상 한편에 식어가는 떡국 한 그릇
어머니는 설날 아침
떡국을 뜨다 목이 메이신다
목이 메이신다

 

박남준 시인의 ‘떡국 한 그릇’입니다.
오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겠지요. 신산한 삶, 고단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편히 누이고 싶은 고향집을 누군들 마다할까요.
그러니 남들 보란 듯 가는 고향집을 올해도 못 가는 마음이 오죽할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허나, 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에 비할까요. 그저 얼굴만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거창하지 않은 바람을 올해도 목구멍으로 넘겨야하나 봅니다.
그렇게 먹먹한 가슴으로 새해 첫날을 맞아야 하는 어머니의 애절함은 떡국 한 그릇도 편히 넘기지 못합니다.

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뜻 깊은 날입니다.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모여 덕담을 나누는 정말 기쁘고 좋은 명절이기도 하구요.
‘나홀로족’이 크게 늘면서 ‘혼밥’과 ‘혼술’이 일상이 되고 있어서 설의 의미는 해가 바뀔수록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올해는 ‘황금개띠’해라면서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시작하고 한 달 보름 만에 설을 맞습니다.
설 하면 으레 가족과의 만남과 이웃과의 정 나눔 등이 떠오릅니다. 세파에 시달려 곤궁한 삶을 살던 이들도 설날만은 주름살을 펴고 웃을 수 있어야 하겠기에 그렇습니다.

설이 언제부터 우리의 명절이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중국의 역사서나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서 설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기록들로 미루어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기록들에 나오는 설의 풍속도는 지금과 비교해도 낯설지가 않습니다. 그만큼 설을 맞고 보내는 조상들의 선한 마음이 오늘에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가족과 친척, 이웃이 즐거운 나눔을 통해 공동체라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 연대감을 확인하는 전통인 것입니다.
해가 바뀌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단순한 셈법에서 벗어나 가까운 이웃끼리 즐거움은 물론이고 슬픔과 고통까지도 나누는 날이 설이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더 나아가 자기중심적이면서 폐쇄적일 수 있는 가족 테두리 밖으로 관심의 대상을 넓혀야 하는 것도 설을 맞는 마음이어야 하겠습니다.

올해는 새해 벽두부터 유난히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예상을 넘는 폭설로 감귤 비닐하우스가 맥없이 무너진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수확을 앞둔 무가 눈에 며칠씩 파묻혀 버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 농가들의 한숨엔 온기가 사라졌습니다.
이들 모두 이웃들입니다. 설에는 이들도 웃어야 하지만, 쉽지 않을 듯합니다.

취업난은 이제 새삼스런 말이 아닙니다. 제주경제는 다른 지역보다 높은 성장률 행진을 이어간다고 하지만 좋아지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는 의문입니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수입도 많아져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아서 입니다.

젊은이들이 집으로 오면 따뜻하게 어깨 토닥여주고 기를 살려주는 설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내 삶이 남들보다 조금 여유롭다고 내세우는 것도 설에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설은 ‘삼가는 날’이라는 의미로 ‘신일(愼日)’이라고도 합니다. 베풀고 나누는 것이 내 것을 내어 주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 하루만이라도 모두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신정익 기자  chejugod@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