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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 농어촌마을, '쾌적한 문화주거중심지' 변신 시도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홍성배 기자 | 승인 2018.02.13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는 적어도 1000여 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촌리는 제주가 핫플레이스로 주목받아 팽창하면서 전형적 농촌마을에서 도심을 보완하는 쾌적한 문화주거지역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은 마을 전경 <신촌리 제공>

[제주일보=홍성배기자]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으로 제주시와 북제주군이 통합되기 전 제주시 동쪽 관문마을로, 전형적인 농어촌 마을이었다. 그랬던 곳이 제주가 핫플레이스로 주목받아 급속하게 팽창하면서 이제는 도심을 보완하는 쾌적한 문화주거지역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주민들은 과거 수백년간 신촌이 ‘성문 밖 가장 큰 마을’이었다며 21세기에 다시금 제주의 중심 마을로 부상할 것이라는 희망에 차 있다.

▲신촌리는 어떤 마을일까=제주시 삼양동 원당봉을 지나 동쪽으로 나서면 넓고도 길게 쭉 뻗은 들판이 반갑게 맞는다. 바로 지역민들과 도시민들의 마음을 확 트이게 하는 대동맥 ‘진드르’다.

마을면적 796㏊의 대부분이 진드르를 중심으로 한 경지면적이었다는 점은 전국적으로 수박과 참외, 월동배추, 무의 소문난 재배단지였음을 단적으로 알게 한다. 백합은 제주도의 효자 수출품목으로 신촌화훼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옛 방식 그대로 이어가는 마을포제가 올해로 159회째를 맞는 것에서 보듯 과거와 현재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

이 같은 신촌리는 적어도 1000여 년 전부터 형성된 마을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이미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 중 하나로 지정돼 신촌현(新村縣)이라 하고, 주변 마을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는 800여 년 전에 ‘웃마을’의 ‘숙군·숫군’ 일대에서 마을을 형성했다가, 다시 현재의 해안가 일대로 옮겨 마을을 형성하면서 마을 이름도 ‘신촌(新村)’이라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신촌 공동체 문화의 표본을 보여주는 ‘남생이못’

▲신촌의 상징과 자부심=신촌은 열녀의 고장이자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하다. 신촌 출신 재일동포인 조규훈 선생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 신촌에 조천중학교를 건립한 것은 그만큼 배움의 중요성과 지역문화가 학교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주민들이 체감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본에서 학교를 세울 목재를 ‘짜맞춤 공법’으로 가공해 배에 싣고 신촌에 왔다.

그러나 물이 깊지 않아 신촌포구에 댈 수 없자 큰물 앞바다에 목재들을 띄워 마을사람들이 일일이 날라다 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학교 건립과정이 감동 그 자체다.

남생이못에 얽힌 사연은 신촌 공동체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남생이못은 서삼동 청년들이 수신계를 조직한 후 풍속사범 범칙금과 생활물자 판매 이익금 등으로 밭을 구입해 만든 연못이다. 농경지 인근에서 물을 구할 수 없어 겪어야 했던 불편을 청년들이 나서서 극복함으로써 인근 마을의 우마까지 혜택을 보게 한 것이다.

주민들은 청년들이 애향심을 토대로 엄청난 지역에 공동체문화의 표본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생각하며 지금의 청년들도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신촌 하면 ‘진드르’를 떠올리게 된다. 마을의 관문이자 제주도에서 몇 안 되는 평야지대인 ‘진드르 농토’를 기반으로 신촌리민들은 광범위한 영농활동을 통해 선지농업을 추구해 왔다.

도로 확장으로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벚꽃도로도 한때 신촌의 상징이었다. 일주도로(진드르) 신촌지역 양쪽으로 가장 길었던 벚꽃도로는 봄이 되면 장관을 연출했다.

해안가의 닭모루(닭ㅁ·루)도 빼놓을 수 없다. 닭모루는 닭이 흙을 파서 앉을 때 날개를 펴있는 모습과 알을 품을 때 양 날개를 펼친 모습이 형상화된 자연지형이라 해 이름 붙였다.

닭모루의 멋진 경관과 함께 꾸불꾸불하게 유선형을 만들어낸 조간대의 바위와 돌, 잘 보전된 주변 환경은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며 탐방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신촌리 마을 이정표 <신촌리 제공>

▲미래 비전과 과제=제주가 살기 좋은 곳으로 주목받으면서 제주시 동쪽 관문인 신촌은 지리적 위치상 쾌적한 문화주거지역으로의 변신이라는 기대와 동시에 난개발이라는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신촌 농업의 상징이었던 진드르에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벌서 외형적인 모습은 바뀌기 시작했다. 기존 마을 내에서도 다세대 주택 신축이 이어지고 있다. 마을에서는 건축 열풍으로 지난 2년여 사이에 1000여 세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구봉 이장은 “신촌은 과거 성문 밖 가장 큰 마을이었다”며 “이 같은 자부심을 바탕으로 제주의 중심 마을로 만들어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그러나 계획도시로 개발되지 못하면서 주차문제 등 많은 문제도 노출하고 있다”며 ”청정 자연과 어우러진 쾌적한 문화주거지역으로 발전하기 위해 마을과 행정이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을 발전 위해 힘쓰는 일꾼들=신촌리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그동안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왔다.

대표적인 게 임대주택 사업으로, 2001년부터 시작돼 2011년까지 4개 동이 건설되면서 모두 24세대가 입주했다. 이를 통해 모든 마을이 납부하는 마을세 탕감과 포제 봉행에 따른 포제비 탕감, 적십자회비와 주민세 대납 등 세금 없는 마을이 현실화됐다.

특히 올해 임대주택 1동 추가 건립에 나서 다른 마을에 비해 윤택한 마을 운영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향 발전을 위해 헌신해 준 국내·외 출향 인사들에게 보은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행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마을의 역사를 오롯이 담은 향토지를 발간하고, 이정표를 진드르 중심지 일주도로와 신설 우회도로 갈림길에 세우는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마을의 정체성을 살리고 미래를 가꾸기 위한 노력에 나서고 있다.

고구봉 이장은 “마을에서 최대한 많은 이익을 창출해내고 이를 100% 주민들에게 환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신촌리는 급속한 인구 유입에 따라 지역 주민들과 이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공존할 수 있는 마을 만들기를 당면 목표로 세우고 자생단체장들을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홍성배 기자  andhong@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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