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그추룩 골암수광?
무사 그추룩 골암수광?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2.0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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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종. 문학박사·서울제주도민회 신문 편집위원장/논설위원

[제주일보] 제주어에서는 꽃을 ‘고장’이라고 한다. 이 ‘고장’은 ‘곶+앙’으로, ‘곶’은 ‘꽃’의 옛 형태를 화석처럼 간직하고 있다. 마치 ‘갈치’라는 말이 ‘갈(칼)처럼 생긴 물고기’라고 붙여진 이름처럼 어휘 속에 고어의 형태를 품고 있다.

이렇게 ‘곶’에서 ‘꽃’으로 변화된 데에는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의 영향이 컸다. 임진왜란 전에는 ‘갈[刀], 고[鼻], 곶[花]’이라는 말이 임진왜란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칼, 코, 꽃’으로 바뀌어갔다. 이는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未曾有)의 국토유린을 겪으면서 생사를 넘나들었던 백성들의 말씨가 거칠게 변하였음을 보여준다.

말을 사용하는 사회의 환경이 말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국어사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흔히들 ‘말[言]은 얼[魂]’이라거나 ‘말[言]은 곧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생각을 담고 있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중국 당나라 때에 관리를 선발할 때 표준으로 삼던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 즉 ‘신수(身手), 언사(言辭), 문필(文筆), 판단력’ 네 가지를 중요한 조건으로 보았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예나 지금이나 그 사람의 언사를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청소년들의 욕설과 거친 말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해 전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언어사용 실태 조사 보고를 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73% 이상이 매일 욕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미디어가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온라인 게임, 인터넷, SNS, TV를 통해 욕설과 거친 말을 접하고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청소년을 바르게 교육하고 인도하여야 할 일부 어른들이 거친 말과 정화되지 않은 말들을 쏟아내고, 그 말들이 미디어를 통해 날마다 보도되는 현실 앞에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

몇몇 정치인들이 외국 정치인의 언어 구사 방법을 벤치마킹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의 정서상 거부감이 들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다른 사람들로부터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 자신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처럼, 좋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겉과 속이 전혀 다르게 위장된 행동을 하라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이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말과 행동을 하거나, 자신을 택한 유권자를 부끄럽게 만드는 말과 행동은 삼가달라는 뜻이다.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말 한마디로 정치적 상황을 정리하는, 탁월한 능력을 바라지는 않지만, 적어도 세계 최고 수준의 고학력 국민의 눈높이에 걸맞은, 품격 있는 말을 써달라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는 청소년들의 거친 말과 욕설은 심리적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고자 하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자신감이 없거나 상대에게 뒤처지는 아이들이 약점 보완을 위해 이런 말들을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들도 이런 심리는 아닌지 묻고 싶다.

우리 제주어에 ‘무사 그추룩 암수광?’ 하는 말이 있다. 달리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렇게 얘기할 때에 ‘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하는 말이다. 몰라서 묻는 말이 아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튀는 말과 행동으로 유권자의 관심을 끌고자 한다는 것쯤은 유권자들은 다 안다. 그러나 어쩌다 한 번 하는 강한 말은 전달력이 클지 모르지만, 반복되는 거친 말은 의도된 바를 거둘 수 없고 상처만 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 듯, 일부 정치인의 거친 말들로 인해 품격 있는 말들이 설 자리를 잃을까 염려스럽다. 우리 주변의 정치인들이 수준 낮은 말을 할 때, ‘무사 그추룩 암수광?’ 하면서 우민(愚民)이 아닌, 깨어있는 유권자임을 알릴 필요가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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