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일기
애도일기
  • 제주일보
  • 승인 2018.02.0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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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 / 숙명여대.가천대 외래교수

[제주일보] 엄마의 병환이 깊어진 것을 알고 작년 한 해 , 될 수 있으면 많은 시간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리라 마음을 먹고 엄마의 병원 방문, 입원에 동행을 하였다. 여름이 지날 무렵, 앞으로 이 번 생, 생명을 갖고 살아가도록 남은 기간이 엄마에게 6-7개월 무렵이라는 진단을 받고는 믿을 수가 없는 현실에 어리둥절 했다. 설마…엄마에게, 우리 가족에게 그런 일이, 설마…그런 마음이 제일 컸다.

남았다고 알림을 받은 그 기간을 포함한 한 해 동안은 여러 일들을 제치고 엄마와 함께 보낼 시간을 최대한 늘려보자고 다짐하였다. 하지만 다짐에는 실행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 그동안 반복되며 켜켜이 쌓여 굳어 버린 일상들이 꿈적도 못할 듯 버티는 것들이 많았다.

우선 고등학교 이후 제주를 떠나 살았던 서울, 그곳엔 나의 일터가 있고 결혼생활을 하며 이룬 가족들은 경기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일·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의 조율이 필요했다.

일을 조금씩 줄여가기 시작했고, 가족들의 이해 속에서 제주에서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조금씩 늘여갔다.

그러다 월·화·수요일과 목요일 오전은 제주, 목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전까지는 육지의 생활이 자리잡게 되었다.

엄마와는 하루에 한 곳, 혹은 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정을 짜고 외출을 하였다. 엄마는 딸과의 그런 시간을 내심 반기면서도 일과 남편, 아이들을 육지에 두고 본인과 시간을 보내느라 제주에 내려와 있는 내게 문득 문득 미안해 하셨다. 그러다가 본인이 병이 많이 깊어진거냐고 확인하기도 하셨었다. 경로우대로 버스 승차 비용이 무료로 되기에 몸이 다소 불편해도 가까운 거리 외출에는 극구 버스 타기를 고집하셨다. 버스를 기다리며 동네 정류장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버스를 타며 서로 자리를 잡아주느라 부산하던, 버스에서 내려 한가로이 걷던, 그 시간들 속에 있던 엄마의 모습이 참 그립다.

동문시장에 내려 호떡을 사서 조금씩 베어 먹으며 느릿느릿 시장 구경을 하다 중앙로 쪽으로 걷다가는 “우리 오늘 노물국 먹게”하시며 바닥에 앉아 채소를 다듬는 어른신들이 내어놓은 채소를 사시곤 했다. 채소 살 땐 그 어르신들이 묻지도 않으셨는데 “우리 똘이우다”라시며 나를 한번 더 쳐다보곤 하셨다. 이뻐라, 자랑스러워라 하시며 나를 건네다 보던 그 눈길이 참 사무치게 또 그리워진다.

병원에서 예상했던 시간들을 못 미치고 엄마는 돌아가셨다.

엄마와 함께 보내기 위해 확보해 놓은 쉼, 여유를 담은 제주의 시간이 잔뜩 남아 있는데....아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일렁였다. 그러다 문득, 그 시간은 엄마가 내게 주고 간, 선물이 아닐까? 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일로, 일상으로 그 시간들을 급히 채우지 않고 비어 있는 그 시간을 그대로 보내보기로 하였다. 이제 난,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채로 엄마와 걸었던 길을, 그 때 미처 가보려 했으나 가지 못했던 길을 걷는다. 그 길을 걷다 보면, 하루치의 슬픔을 극복했다 여겨져 뿌듯한 마음이 들 때도 있고, 엄마 없이 펼쳐질 미래가 여념이 안돼 발이 훅 빠지는 듯 허망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 마음을 그대로를 느끼며 다소 느릿하게 지내고 있다.

근래 끝나 책으로 출간된 법원 상담 가이드라인 글쓰기 작업 중, 미성년 후견 상담의 내용을 싣는 즈음에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을 떠나보낸 가족들은 애도의 기간이 필요하다’라는 문장을 썼다. 그랬더니 TF(태스크포스)팀의 한 판사님께서 “강선생님, 그러고 보면 애도의 시간은 왜 필요한 걸까요?” 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아, 애도요. 그것은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상실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 죽은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새로운 자아 정체감을 발전시키기 위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해서 필요해요” 라고 답을 했었다.

내가 답한 그 시간들을 현재 나는 오롯하게 보내고 있다. 동문시장에 들러 호떡을 사서 느릿하게 산지천을 걸으며 먹는다. 내친 김에 탑동까지 걸어본다. 고등학교 시절, 미래에 대한 두려움, 잘 하고 싶은데 뜻대로 잘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답답할 때 탑동 방파제에 앉아 눈 가득, 바다를 담은 적이 떠오르며 미소 짓는다.

바다 앞에 서면 오르내리는 파도를 보며 그 파도를 따라 내 숨도 오르내리는 박자를 맞추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파도만을 바라보기.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들숨과 날숨의 숨결만 남아 있을 때 바라본 수평선, 그 끝. 아니 끝이 아니라 너머의 시작인 그 경계. 결국 그, 경계는 또 다른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느끼며 영차! 힘을 얻어가곤 했었던 그 바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교차하며 악수한다. 그대로인 어린 마음과 훌쩍 큰 성숙한 마음이 교차하며 따뜻하게 서로를 안아준다. 엄마도 이 바다 앞에 한 번씩 홀로 서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엄마가 살아온, 또 내가 살아갈 시간들이 연결되며 따뜻한 제주 땅의 기운이 봄을 조용히 알려오는 듯하다.

나의 슬픔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나의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런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롤랑바르트의 애도일기 중-

 

 

제주일보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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