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관료의 투쟁
대통령과 관료의 투쟁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2.04 1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일보] 관료들이 얼마나 무소불위하고 통제불가능한 조직인가 하는 점은 역사에서 배운다. 조선시대 왕은 절대 강자가 아니었다. 어느 시대보다 신권(臣權)이 왕권(王權)을 추월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관료들은 명분을 내세워 왕의 언행에 사사건건 시비를 마다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왕을 갈아치우는 반정(反正)도 불사했다. 조선의 역사는 왕과 신하(관료) 간의 권력 투쟁사(鬪爭史)이기도 했다. 사헌부·사간원 등 대간(臺諫)들은 끊임없이 왕을 물고 늘어졌다.

세종대왕조차 왕실 전용 사찰을 지으려다 반대에 막히자 ‘단식 투쟁’을 하고 그래도 안되자 대궐 밖 아들 집으로 ‘가출’할 정도였다.

왕이 말을 안들으면 관료들은 ‘파업’으로 맞섰다. 연산군 즉위 초반에는 대간이 한 해 38번이나 총사직하면서 정부 기능을 마비시켰다.

거꾸로 왕권을 강화했던 정조 임금은 열흘 사이에 대사간을 다섯 번이나 바꾸는 등 잦은 인사로 시비 걸 틈을 주지 않았다.

그 밀고 당기기는 흥미롭다.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 때 10년간 정부혁신위원장·중앙인사위원장·방송위원회위원장을 지낸 조창현 한양대 석좌교수는 희수(喜壽) 기념 회고록에서 관료들과 싸웠던 에피소드를 여럿 소개했다.

“정부혁신위원장 발령을 받았다. 오전에 출근해 몇 가지 혁신 업무를 지시한다. 오후에는 간부들이 내 방에 몰려와 오전 지시 사항에 대해 조목조목 불가(不可) 설명을 하고 간다. 정부 혁신은 관료들이 원하는 만큼만 할 수밖에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명장을 주면서 적어도 한 달에 두 번씩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한 달에 두 번은 고사하고 단 한 번도 독대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 누구도 아무 일 없었던 듯한 태도였다. (그 때)나만 우습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에게)중앙인사위원장을 맡기면서 인사 업무를 행정자치부에서 인사위원회로 가져올 것을 지시했다. 참모들은 미적거렸고 관료들은 거세게 맞섰다. 대통령의 지시 사항인데도 행정자치부는 ‘끗발’이 서는 이것(인사 업무)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이만하면 관료들의 통제 불능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도 ‘전봇대’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관료 집단의 혁신을 시도했다. 공무원에게 동료 공무원을 감시하게하는 이른바 ‘이공제공(以公制公)’ 수법도 써보았지만 결과는 ‘꽝’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관료 집단과 싸웠지만 역시 결과는 요즘 TV에서 보시는 바와 같다.

이제 선수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정부부처 첫 업무보고 자리에서 관료들을 향해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이 없는 공직자가 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에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세상이 바뀌는데 공직 사회는 과거 방식을 안 바꾸고 있다”며 관료 사회를 질타했다. ‘복지부동, 무사안일, 탁상행정’이란 말도 쓰면서 “공무원이 혁신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혁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불호령도 내렸다.

지도자와 관료의 권력 투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어느 정권에서도 관료집단은 진보냐, 보수냐는 상관없었다. 역대 대통령이 이런 공직 사회를 혁신한다며 수술대에 올렸다가 거꾸로 수술당한 사례가 무수히 많을 뿐이다.

사회학자 미셸 쿠로지에(Michel Croz ier)가 말한 대로 관료는 정치 발전이나 언론의 자유, 역사적 가치 창출같은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조직의 팽창과 더 많은 권한과 승진 뿐이다. 그들의 모국은 관료 조직이며 그들의 이념은 관료주의다….

그렇다면 관료의 본질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관료 집단은 인류가 고안해낸 가장 가공할 조직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의 질타에 관료들은 일단 몸을 낮추고 있다. 그러나 역대 정권 초반 개혁 대상으로 몰렸다가 매번 뒤집기에 성공한 이들이 관료 집단이다.

관료들의 ‘저항’과 문 대통령의 ‘리더십’ 간의 투쟁은 이제부터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